[편집국에서] 퐁피두 분관과 시민의 알권리
김종열 문화부장
세계적 미술관 부산 유치 두고
시민에 공개된 정보 턱없이 부족
부산시 입맛 따라 정보 선별 제공
시민 속이는 것과 똑같은 행위
부산시는 원점서 공론화 재시작
시민단체도 막무가내 태도 접어야
옛날 서쪽의 어느 나라에 난폭한 왕이 있었다. 전쟁 중 한쪽 눈을 잃고 외모 콤플렉스마저 생긴 왕은 되레 위엄 넘치는 자신의 모습을 초상화로라도 남기고 싶었다. 왕의 명을 받은 신하들은 최고의 화가를 찾아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완성된 초상화를 본 왕은 대노하며 화가를 사형에 처했다. 왕의 외눈박이 얼굴을 사실 그대로 그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 화가는 두 눈이 멀쩡한 왕의 얼굴을 그렸지만, 역시 목숨을 잃었다. 흉칙한 실제 모습도 싫었지만 거짓된 아름다움도 싫었던 것이다. 세 번째 화가는 눈이 멀쩡한 쪽의 옆모습을 그렸다. 거짓을 그리지 않고도 보기 흉한 부분을 가린 기지를 발휘한 화가는 왕으로부터 큰 상을 받았다.
많이들 알고 계시는, 외눈박이 왕의 초상화 이야기다. 이 우화의 교훈은 어디에 있나. 세 번째 화가의 지혜로움에 있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만 비틀면, 화가의 지혜는 응당 본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이 된다. 진실을 왜곡하기 위해 상황의 한쪽 측면만을 보여준다. 유불리를 따져 일부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제공한다. 가짜뉴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진실도 아니다. 마치 외눈박이 왕의 옆모습 초상화처럼.
어찌 보면 세상만사가 대체로 그러하다. 장점 혹은 자신의 목적에 유리한 사실은 앞세우고, 단점 또는 불리한 사실은 가급적 가린다. 대체로 그러하다보니 심리적 저항감도 적다. 그저 일종의 잘 짜여진 마케팅 같은 거다. 그러나 만사가 대체로 그렇다 할지언정 그중에 절대 그래선 안되는 것들도 있다. 바로 공사(公事)에 해당하는 것이다. 관(官)은 스스로 행하는 사업의 모든 정보를 유불리를 떠나 축소나 왜곡 없이 시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관이 대리하지만 모든 공사의 진정한 사업주체는 시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시민의 알권리다.
그런데 최근 퐁피두 센터 분관을 유치하려는 부산시의 행태는 그저 고객 유치에 혈안이 된 사기업의 교묘한 마케팅 행위 같다. 시민들에게 장미빛 전망만 늘어놓는다. 내년에 문을 여는 서울 퐁피두의 계약이 5년이 지나도 여전히 계속될 수 있다는 점, 서울보다 수 년 늦게 개관해 자칫 서울 전시의 재탕이 될 수도 있다는 점 등에 대해선 부산시 공무원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언론을 모아놓고 서울 퐁피두의 계약 연장이 어렵다는 뉘앙스의 의견을 흘리기도 한다. 이것이 뉴스화돼 서울 퐁피두 추진 측이 반발하자, 그때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울 퐁피두 계약) 연장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라고. 마치 반쪽 얼굴만으로 두 눈이 다 성한 척 하고선 “나는 절대 두 눈을 다 그리지 않았다. 너희가 멋대로 판단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부산시의 선전선동을 가감없이 뉴스로 옮긴 기자들도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기자라면 부산시가 애써 가린 초상화의 반대편을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잘못은 속은 놈이 아니라 속인 놈에게 있다. 그러면 부산시는 다시 말할 테다. “우리는 속인 적 없다”고. 그러나 당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시민을 속이는 것 다름 아니다.
이참에 지역 시민단체에도 한 마디 보탠다. 부산시는 옆모습의 초상화를 그리는 ‘교묘함’이라도 보여주지만, 시민단체는 막무가내 고집만 부리는 아이같다. 부산시는 퐁피두 분관 유치 및 운영에 드는 구체적 비용의 예상치를 제시하고, 분관 유치의 기대효과(물론 부풀린 경향이 농후하다)와 비교하지만, 시민단체는 그저 “퐁피두 분관은 돈 먹는 하마”라는 구호만 되풀이한다. 부산시가 제시한 예상 비용 수치 중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혹은 해당 비용만큼의 예산을 어떻게 전용(轉用)하는 게 더 효과적인지…, 구체적인 논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부산시도 처음엔 시민단체가 꽤나 두려웠던 모양이다. 시민단체가 퐁피두 분관 유치 관련 토론회를 벌인다고 하니, 부랴부랴 같은 날 같은 시간대 맞불 토론회를 급조하며 훼방을 놨다. 자신들이 애써 감춰 둔 초상화의 반대쪽 모습이 조목조목 드러날 것 같아서다. 그런데 시민단체의 토론회가 속 빈 강정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오히려 “한 테이블에 모여 머리를 맞대자”고 먼저 제안한다. 현재 시민단체는 라운드 테이블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부산시도 시민단체도 모두 바뀌어야 한다. 부산시는 퐁피두 분관 유치를 목표로 시민을 ‘마케팅’할 것이 아니라, 유치가 과연 부산 시민과 예술문화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부터 공론화해야 한다. 라운드 테이블의 목적 역시 거기에 맞추고 시민단체의 참여를 종용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단체의 의견이 곧 시민의 의견인 양 목소리 높이기보다 단체의 주장에 대한 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시민과 부산시를 설득해야 할 테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