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환율 1400원
원·달러 환율 1400원은 외환 당국의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진다. 과거 우리 경제가 중대한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섰기 때문. 1990년 환율변동제 도입 이래 1400원 선을 넘은 시기는 1997~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강원 레고랜드 사태와 자금시장 경색 등 세 차례다. 환율이 1400원대로 상승할 만큼 원화 가치가 하락한 고환율 발생 시 비상이 걸리기 마련이다. 올 4월 16일 달러화 강세 영향으로 환율이 장중 한때 1400원을 돌파하면서 급등하자 외환 당국이 개입해 조정에 나섰던 이유다.
최근 환율이 5일(현지시간) 투표가 시작된 미국 대선의 판세에 따라 등락하며 1400원 선에 육박해 정부 당국은 물론 금융권과 경제계를 긴장시킨다. 5일 새벽 2시 환율은 전장 서울 외환시장 주간 거래 종가 1379.4원보다 3.9원 내린 1375.5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주말부터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지지율 격차를 좁혀 초박빙 구도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르자 환율이 떨어진 것. 하지만 그간 환율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달러가 강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고공행진을 벌였다. 지난달에만 70.5원 오르며 5%가 넘는 상승곡선을 그렸다. 지난달 25일 1390.5원에 장이 마감된 바 있다.
환율이 1400원대를 넘보는 건 3분기 한국 수출이 2분기 대비 0.4% 감소한 탓에 원화 가치가 하락해서다. 더 큰 원인은 달러가 전 세계 외환시장에서 강세인 데 있다. 이는 미국 경제의 견고성과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가 공약인 대규모 관세 확대 정책을 실시하면 인플레이션 대책 강화와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달러의 초강세 지속이 예상된다는 게다. 이런 까닭에 외환시장에선 트럼프가 당선되면 환율이 추가 상승해 1400원을 웃돌고, 해리스 당선 시 1350원 밑이 될 거란 전망이 나돈다.
원화 가치는 한국 경제의 체력을 보여준다. 저성장 기조가 깊어진 국내 경제는 환율 급등 시 물가 상승 압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고환율은 수입 물가까지 끌어올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 이 경우 내수 침체 극복과 민생 안정을 위한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에 제동이 걸릴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 거시경제 관리에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성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환율 방어가 요구되는 1400원 선 돌파 여부의 키를 쥔 미 대선 결과를 예의주시하며 현명한 금융·통화 정책을 펼쳐야 할 시점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