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 칼럼] 폐수 흐르던 태화강은 기적을 이뤘건만…
논설위원
오염 오명 탈피 생태관광지로 변신
2028년 국제정원박람회 유치 성공
울산, 국제정원 도시로 이미지 개선
반면 부산은 동천 문제 등 해결 답답
최근 시 행정 긴장감도 크게 떨어져
임기 후반 박 시장, 시정 더 다잡아야
부산과 인접한 광역시인 울산은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나라의 ‘대표 공업도시’다. 번영을 구가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기틀이 울산에서 마련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 이른바 ‘중후장대’ 산업의 심장이 울산이다.
이런 이력으로 울산은 대표 공업도시의 타이틀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공해의 도시’라는 오명도 함께 떠안았다. 초기 산업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통과의례 같기도 했다. 울산의 공해와 오염 현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곳이 도심 정중앙을 지나 동해로 흘러가는 태화강이었다. 1990년대까지 온갖 폐수와 오수의 유입으로 악취가 진동해 ‘죽음의 강’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옛날이야기가 됐다. 2000년대 초부터 울산시가 ‘태화강 살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태화강 일대는 그야말로 환골탈태했다. 2019년 7월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면서 연간 500만 명이 찾는 생태관광지로 변신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 최근에는 ‘2028 국제정원박람회’의 개최지로도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나라에선 전남 순천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한다. ‘공업도시이면서 정원도시’라는 언뜻 양립하기 어려울 듯한 두 가치의 공존을 실제로 증명하는 국제적인 본보기가 된 것이다. 환경오염과 공해로 신음하던 국내 최대의 공업도시 울산이 태화강의 기적 스토리를 발판으로 세계가 인정하는 국제적인 정원도시로 변신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2028년 4월부터 6개월간 열리는 울산 국제정원박람회의 개최 장소도 이런 취지에 맞게 태화강 국가정원과 인근 삼산·여천쓰레기매립장으로 정했다고 한다. 모두 한때 폐수와 쓰레기로 악취가 진동하던 곳이다. 특히 태화강은 역한 냄새와 오염, 이를 견디지 못한 물고기들의 떼죽음 등 수질 등급을 말하기조차 민망했지만 지금은 지자체와 시민, 기업의 지난한 노력으로 1급수 수질에다 연간 5만 마리의 철새가 찾는 생태 공원이 됐다.
울산시는 반전의 스토리를 품은 이곳에 박람회가 열리면 전 세계에서 1300여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박람회를 계기로 도시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산업도시에서 ‘세계적인 정원도시’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비록 이웃 광역시의 일이긴 해도 매우 기분 좋은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울산 태화강의 유쾌한 반전 스토리는 자연스럽게 부산의 동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결론은 같지가 않다. 똑같이 도심을 흐르는 하천이건만 동천은 20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질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엔 성지곡 수원지의 물을 활용한다는 방안까지 나왔는데 시민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한다.
울산의 태화강과 비슷한 시기인 20년 전 무렵에 함께 수질 개선에 착수했지만 지금 양쪽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다. 길이 46㎞에 달하는 태화강은 성공했는데 왜 동천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인지 시민 입장에선 답답하기만 하다.
결국 이는 부산시의 행정 역량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정점에는 지자체 행정의 수장인 시장의 의지와 노력 부족을 들 수 있다. 근래 부산에서 큰 논란이 제기됐던 사례도 대체로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바로 구덕운동장 복합 재개발 철회나 백양터널 통행료 무효화, 이기대 공원 입구 고층 아파트 건립 논란을 꼽을 수 있겠다. 모두 시가 밀어붙이다 종국에는 반대 여론에 밀려 뜻이 꺾인 사례들이다.
결과적으로 시가 체면을 구기게 됐으나 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이보다는 지금 부산 시정의 긴장감이 현저히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 더 우려스럽다. 박형준 시장이 ‘15분 도시’, 시민행복도시, 혁신 거점도시 등 큰 어젠다 위주에 빠져 있는 사이 정작 시민들의 실생활 현안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 공직 사회 내에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알게 모르게 대충주의와 보신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온다.
하나를 들어 전체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하나를 통해 다른 열 가지를 알 수도 있다. 부산 시정이 점점 시민들의 삶과 동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은 박형준 시장의 8기 임기 후반부를 맞아 더 많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드러난 시정의 여러 난맥상은 이의 전조일 수 있다. 지역에선 벌써 박형준 시장의 3선 도전설에다 대권 도전설까지 온갖 확인되지 않는 말들이 들린다. 하지만 시장 임기는 2년이나 더 남았고 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미덥지 않은 말에 솔깃하기보다는 시민들의 삶에 더 천착하는 모습이 지금으로선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부산에도 울산처럼 좋은 소식이 자연스레 오지 않을까.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