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일상화 영구 임대 고령 주민 "건강한 애도 문화 만들래요" [연결:다시 쓰는 무연고자의 결말]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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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종합복지관 애도 모임 운영
임대아파트 ‘죽음’ 충격 완화해

지난 25일 동원종합사회복지관에 모인 영구 임대 아파트 애도 문화 소모임 회원들. 이들은 이웃의 죽음에서 비롯된 상실감을 토로하며 주민 공동체 내의 애도 문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5일 동원종합사회복지관에 모인 영구 임대 아파트 애도 문화 소모임 회원들. 이들은 이웃의 죽음에서 비롯된 상실감을 토로하며 주민 공동체 내의 애도 문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부산 한 영구 임대 아파트의 고령 주민들이 일상화되고 무감각해진 이웃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여러 제도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장에선 이웃을 애도하거나 자신의 존엄한 죽음을 생각할 만한 문화적 기반이 없는 상태다. 이런 공백에 무력감과 갈증을 느꼈던 주민들은 애도 문화 소모임을 꾸렸다.

부산 북구 동원종합사회복지관은 올 4월부터 영구 임대 아파트 주민 5명으로 구성된 애도 문화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같은 아파트 이웃이 죽고 사라지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접하며 자신의 처지에 무력감을 느끼거나,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에 충격을 받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했다.

모임원 곽순귀(84) 씨는 지난해 가을 사망한 이웃의 집에 다른 이웃이 드나들며 생필품을 가져가는 것을 목격했다. 곽 씨는 “아직 망자의 혼이 남아 있으니 손대지 말라고 했지만, 말을 듣는 사람은 없었다”며 “정말 허무했다”고 말했다. 정춘옥(78) 씨는 “여긴 가족이 있어도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며 “그래도 이웃이나 친구가 있을 텐데 죽고 나면 말 한마디 없이 떠난다. 자연스레 내 앞날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슬펐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애도 문화에 갈증을 느낀 이유는 이들의 생활 반경에선 존엄한 죽음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의 공영장례가 진행되더라도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은 조문하러 가기도 어렵다. 자취를 감춘 이웃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그리고 망자의 집이 순식간에 치워지고 다른 이웃이 입주하는 쓸쓸한 풍경이 반복될 뿐이다. 일부 주민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잃기도 해 이웃의 사후를 챙기는 건 먼 이야기에 불과했다.

소모임은 죽음이라는 화두를 직접적으로 던지기보다,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먼저 확산시키기로 했다. 올 5월 아파트에 무연고 사망자를 애도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하려고도 했지만, 불길하다는 일부 주민의 반발이 있었다. 소모임은 접근 방식을 바꿔 올 하반기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존엄사에 대한 가치를 확산하는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동원종합사회복지관 박진숙 관장은 “많은 주민이 인생 말기 단계에 들어섰지만 죽음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행정적인 장례 지원과 별개로 주민 공동체의 건강한 애도 문화를 조성해 이웃의 지지 속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글·사진=손혜림 기자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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