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신발특구, 아 옛날이여
흔히 “부산은 신발 산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부산은 신발과 인연이 깊다. 100년이 넘는 한국의 신발 산업은 부산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은 부산을 국내 신발 산업의 중심지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원료 수입 입지가 좋고, 피란민 유입으로 산업 활동 인구가 풍부했던 부산은 신발 산업의 최적 조건이었다.
1960년대 부산의 신발 제조업체들은 부산진구와 동구를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신발 대기업 7곳 중 무려 6곳이 부산진구에 있었다. 이곳에 있던 신발 업체들은 한국 신발을 대표할 정도로 유명했다. 범표, 말표, 기차표 신발은 그 시절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1960~70년대 이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였다. 당시 시골 학교 교실 신발장은 비슷한 크기의 까만색 고무신 일색이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제 신발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1980년대 부산진구의 신발 기술력은 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리복과 나이키 같은 글로벌 기업 운동화가 이곳에서 생산됐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신발 수출은 급격히 성장한다. 명실공히 부산진구는 대한민국 신발 산업의 메카였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많은 신발 공장이 국제 경쟁에서 밀리면서 큰 시련을 겪는다. 쟁쟁하던 회사들이 도산하거나 신발 생산을 중단한다. 신발 공장이 떠난 자리엔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은 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다. 다만 진양고무 공장이 있었던 자리 옆 진양사거리에는 신발 조형물이 부산 신발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부산진구에는 신발 기업들의 명멸과 부침을 증언하는 생생한 역사가 살아 숨 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한국 신발 산업 황금기를 이끈 부산진구를 2021년 신발 산업 성장거점 특구로 지정한 바 있다. 한데 부산진구가 신발특구로 지정된 이후, 오히려 지역 내 신발 제조업체 수가 2021년 232곳에서 2024년에는 98곳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유야 국내 인건비 상승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단의 대책 없이는 재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현대인들에게 신발은 필수재다. 오늘날 패션은 신발로 완성된다고 할 정도로, 신발은 자기 정체성 표현의 수단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감안해 고부가 가치 신발 생산 등 미래지향적으로 신발 산업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굳이 옛 영광의 재현이라 하지 않겠다. 다시 100년을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지역 사회에 신발이 남긴 자취와 흔적이 너무나 크기에 하는 말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