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1회 선원의 날에 부쳐… ‘BS867-48121’
박명섭 성균관대 글로벌 경영학과 명예교수 (사)한국해양비즈니스학회 이사장
지난달 21일은 ‘제1회 선원의 날’이었다. 선원의 일터는 바다이다. 지구 표면의 71%를 차지하는 바다는 지구상 마지막 미개척 영역이다. 특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해상 영토가 육상의 4배가 넘는 한국에 있어 바다의 가치는 더욱 크다. 바다는 저렴하고 안전한 무역 항로, 크루즈 항로, 해저 자원 그리고 수산물 등을 통해 큰 국부를 창출해 줬다. 이러한 창출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선원들이 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해양의 중요성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해양 정신을 천시해 왔다. 어선이든 상선이든 크루즈선이든 승선하고 있는 선원을 뱃사람이라 표현하지 않고, 배라는 단어 뒤에 사내의 낮은말을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배를 천시하는 마음은 바다를 경원시하는 사고와 일맥상통한다. 이 원고 제목의 ‘BS867-48121’은 1986년 여름에 필자가 영도에서 선원 교육을 받고, 발급받은 선원수첩 번호이다.
배는 영어로는 ship이다. Gentlemanship, Friendship, Knightship 등의 단어가 있다. 배라는 ship 앞에는 거의 좋은 의미의 단어가 붙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서양에 비해 배를 천시하는, 나아가 바다를 멸시하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돌이켜 보면, 신라시대인 9세기에 서남해안의 해적을 평정한 장보고가 지금의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 당나라와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을 주도했다. 이처럼 우리에겐 우수한 해양인의 DNA가 흐르는 만큼 한국 선원의 우수성은 역사서에 자주 등장한다. 몽골의 원정군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항해술이 뛰어난 고려 수군을 이용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조선 수군의 혁혁한 전공은 우수한 선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DNA로 부존자원이 없었던 1960년대부터 한국 선원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아 한때 10만 명의 선원이 해외로 인력 수출돼 외화를 벌어들였다. 이들은 해운산업 강국의 건설에 큰 기둥이 된 인적자본이었다.
해양산업에 있어서는 선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고도의 정밀 장비를 다루고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도 더 뛰어난 인재가 필요하다. 향후 완전히 무인자동화 된 선박이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현재까지 알고 있는 해양 지식보다 더 많은 고도화된 지식과 경험 기술을 가진 해기 인력 예컨대 ‘스마트 선원 인재’가 필요할 것이다.
우수한 선원은 다른 직종에 비해 장시간 교육받고 훈련받아야 하므로 배출이 어렵다. 습득한 항해 기술이 해군 함정의 운항에도 이용되기 때문에 우수한 선원의 확보는 그 나라의 국제물류, 국제무역뿐만이 아니라 해군력 나아가 해양력과 직결될 만큼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선원들은 해양 환경 보호, 해양 보안 유지, 그리고 해양 구조 활동까지 수행한다. 그들이 일하는 곳은 호수가 아니라 기상에 따라 수시로 돌변하는 위험이 가득한 바다이다. 약 40년 전에, 원양어선 승선 경험을 위해, 선원 교육 이수 후 여권이 아니라 선원수첩을 들고 1986년 부산수대 원양어업 실습선을 약 두 달간 승선한 필자는 절감한다. 요즘의 젊은 MZ 세대가 선원직을 택할 이유가 없다. 임금을 육상직에 비해 2~3배 높여 준다 해도 답은 글쎄다. 해수부, 해양수산 유관기관, 해기사, 선원 단체, 학계, 관련 업계들이 머리를 맞대고 선원직의 매력 제고를 위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아울러 아시아 선원이 전 세계 해운의 70%를 차지한다는 통계에서 우리나라가 중국, 동남아, 미얀마를 포함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선원들을 양성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한국인)과 공조해 아시아 선원 양성 허브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도국 노동자를 한국에서 선원으로 육성해, 이들에게 우리나라와 해외에서의 취업 기회를 얻게 한다면 개도국 경제에 기여하고, 해양 선진국 위상을 세계적으로 떨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