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치우지 못한 현수의 방 [연결:다시 쓰는 무연고자의 결말]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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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남겨진 것을 정리할 자격

지난 5월 19일 사망한 고 강현수(가명) 씨의 오피스텔. 고아였던 현수에겐 상속을 주장할 가족이 없다. 법정후견인이었던 사회복지사 김지은 씨도 피후견인인 현수가 사망하고 나선 후견이 종료돼 집을 정리할 법적 권한이 없다. 현수의 집은 병원에 입원하던 시점에 멈춰있다. 김 씨 제공 지난 5월 19일 사망한 고 강현수(가명) 씨의 오피스텔. 고아였던 현수에겐 상속을 주장할 가족이 없다. 법정후견인이었던 사회복지사 김지은 씨도 피후견인인 현수가 사망하고 나선 후견이 종료돼 집을 정리할 법적 권한이 없다. 현수의 집은 병원에 입원하던 시점에 멈춰있다. 김 씨 제공

누군가 깊게 잠들었다 금방 일어난 듯 침대엔 이불이 구겨져있다. 깨끗하게 빨아 빨래건조대에 널어놓은 양말도 그대로. 유명 트로트 가수 사진이 프린트된 형광 분홍 응원봉과 죽기 일주일 전 다녀온 콘서트 티켓도 탁자 위에 그대로 올려져있다.

모든 게 지난달 현수가 병원에 입원한 시점에 멈춰있는 이곳. 5월 19일 34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강현수(가명)의 집이다.



#이모라고 불러도 돼요?

현수의 원래 이름과 정확한 생년월일은 아무도 모른다. 현수는 8살 무렵 부산 한 백화점 앞에서 덩그러니 홀로 발견됐다. 출생신고도 되어있지 않았던 현수는 아동일시보호소로 옮겨지면서 주민등록이 이뤄졌다. 이후론 사회복지시설에서 쭉 자라왔다. '강현수' 세 글자도 아동일시보호소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발달장애가 있지만 장애정도가 심하지 않은 현수는 시설에서 나와 살고자 하는 의욕이 아주 강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생활비를 지원받는 것도 원치 않았다. 내가 번 돈으로,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집에서 두 발 뻗고 살고 싶었다.

2021년 12월, 20여 년 만에 생애 첫 독립 생활이 시작됐다. 일자리도 있는 현수는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자신 명의의 오피스텔도 마련했다.

호불호가 명확했던 현수는 같은 시설을 이용하던 다른 장애인들과도 두루 친하게 지내는 사교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유독 사회복지사인 김지은만큼은 잘 따랐다. 둘은 부산시 장애인탈시설주거전환지원단 팀장과 탈시설장애인 관계로 만났다. 현수는 지원인력과 연락하는 것도 싫은 내색이었지만 지은에게만은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둘이 성년후견 제도를 통해 가족 아닌 가족이 된 건 현수가 아프고 나서부터였다. 현수는 평소 신장이 좋지 않았고, 종종 지은이 병원 진료를 동행했다. 2023년 초 상태가 나빠지자 병원에서는 입원 치료를 권유했다. 입원을 하려면 보호자가 있어야 했고, 그제서야 현수에게 법적 보호자가 될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현수는 성년후견인을 지정하면 어떻겠냐는 지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2023년 8월 지은은 현수의 성년후견인으로 지정됐고, 현수에게도 '보호자'라고 부를 수 있는 법정 대리인이 생겼다. 가족이 없는 현수에겐 사실상 가족이 생겨난 것과 다름 없었다.

“후견인이 되고 나서도 그냥 저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어요. 하루는 이모라고 불러도 되냐고 묻길래 그래도 된다고 했는데, 쑥쓰러웠는지 그냥 선생님 선생님 하더라구요.”



#갑작스러운 죽음이 닥쳤다

5월 15일 밤 지은은 현수에게서 몸이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았다. 야간이라 주변에 문을 연 병원이 없어 다음날 아침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게실염과 맹장염 소견을 받았다. 예상보다 염증은 심했다. 11일부터 통증이 시작됐지만 감각이 무딘 현수는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입원치료를 받다 다음 주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입원 5일차 현수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신장 손상을 유발하는 조영제 때문에 CT촬영은 최대한 피하려고 했지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선 방법이 없었다. “CT라도 찍으려고 하던 중 현수 맥박이 빨라졌고 그러다 산소 공급이 안됐다고 했어요.” 그렇게 현수는 세상을 떠났다.

지난 5월 19일 사망한 고 강현수 씨의 유골 봉안함. 성년후견인이던 김지은 씨가 '사실상 시신이나 유골을 관리하는 자' 로 연고를 인정받아 현수의 장례와 화장에 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김 씨 제공 지난 5월 19일 사망한 고 강현수 씨의 유골 봉안함. 성년후견인이던 김지은 씨가 '사실상 시신이나 유골을 관리하는 자' 로 연고를 인정받아 현수의 장례와 화장에 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김 씨 제공

장례는 성년후견인 자격을 앞세워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현수가 사망한 건 일요일이었지만, 후견인증명서를 월요일 아침에 떼어 오겠다고 병원 장례식장에 약속해 사망 당일 빈소가 차려졌다. 현수의 장례식엔 지은과 함께 다니던 교회 지인들이 찾아와 기도를 하고 갔다.

화장과 봉안도 성년후견인임을 알리고 허락을 받았다. 사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써야했지만, 현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지은이었기에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제가 직접 장례를 치러줬으니까 평소 지인들에게 부고를 보낼 수 있었어요. 교회 지인들이 와서 함께 기도를 해줬어요. 현수의 마지막은 쓸쓸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생전 흔적을 하나하나 정리할 자격은 가족뿐

지난 5월 19일 사망한 고 강현수(가명) 씨의 오피스텔. 고아였던 현수에겐 상속을 주장할 가족이 없다. 법정후견인이었던 사회복지사 김지은 씨도 피후견인인 현수가 사망하고 나선 후견이 종료돼 집을 정리할 법적 권한이 없다. 현수의 집은 병원에 입원하던 시점에 멈춰있다. 김 씨 제공 지난 5월 19일 사망한 고 강현수(가명) 씨의 오피스텔. 고아였던 현수에겐 상속을 주장할 가족이 없다. 법정후견인이었던 사회복지사 김지은 씨도 피후견인인 현수가 사망하고 나선 후견이 종료돼 집을 정리할 법적 권한이 없다. 현수의 집은 병원에 입원하던 시점에 멈춰있다. 김 씨 제공

장례와 화장을 지은이 도맡아 해결해서 현수는 현재 법적으론 무연고 사망자가 아니다. 장사법에서는 연고자의 범위로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를 포함하고 있고, 지은은 여기에 해당됐다.

그러나 장사법상 연고자로 지은이 가진 권한은 딱 장례와 화장까지였을 뿐, 사후 정리에선 그 어느 것도 쉽게 손댈 수 없었다. 지은은 연고자이자 성년후견인일 뿐, 현수의 상속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년후견은 피후견인이 사망함과 동시에 종료되는 게 원칙이다.

집도 그가 병원에 입원했던 시점의 상태 그대로다. 이 집의 소유자는 현수. 만약 세입자였다면 집주인이라도 나서서 법적 절차를 밟는 등 정리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현수의 몸만 사라진 채 남아있는 집은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 그냥 남겨진 상태로 존재한다.

“피후견인이 사망하고 나서부턴 성년후견 자격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서 집을 치우러 안에 들어가는 것도 조심스러워요. 주거침입 소지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무것도 치우거나 손대지 않고 가만히 두고 있어요.”

가장 황당했던 건 통신사 콜센터에 현수 집에 연결된 인터넷을 해지하기 위해 연락했을 때다. 현수의 가족이 아니라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하길래, “앞으로 어떻게 되냐”고 되물었더니 “요금이 계속 현수 명의의 계좌에서 빠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잔액이 없으면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수가 사망한 지 38일째인 6월 25일, 현수의 통장에선 인터넷 요금 2만 7400원이 빠져나갔다.

현수의 흔적을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최소 2년 이상 걸리는 상속재산관리인 선임 청구를 통해 해결하는 것뿐이다. 지은이 개인으로 대응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현재 부산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가 상속재산관리인 선임 청구 등 법적 절차를 밟기로 했다. 지은은 최근 법원에 성년후견인 종료를 신청했다.

“사후 정리도 당연히 내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할 수 있는 게 없어 막막했어요. 가족에게서 버려졌다고 하더라도 시설 생활이 아닌 자립 생활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고, 또 돌봄의 형태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잖아요. 장례부터 살았던 터전 정리 등 마지막을 존엄하게 챙길 수 있도록 체계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가족 구성·돌봄 형태 다양화…실정 맞는 사후처리 체계 마련돼야

민법상 사후 재산처리 권한은 상속인에게만 두는 것으로 매우 엄격하고, 상속인이 아니라면 상속재산관리인 선임 청구 등 거쳐야 하는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무연고 상태로 사망해 상속인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후견인처럼 법적 인정을 받은 사회적 가족이 있더라도 사후에 개입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사망자가 생전에 맺은 사소한 계약을 해지하는 것에 있어서도, 법정후견인의 자격이 사후에 인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가족이 아닌 사람이 망자의 계약해지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개별 상황에 맞춰 판단해야 한다"며 "계약에 대한 해지를 주장할 대리인의 범위를 딱 선을 그어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지자체도 사후 상속재산관리인 선임 청구 등 절차가 복잡해 선뜻 나서지 않으면서 대부분 무연고 사망자의 유류재산은 사실상 방치돼있다. 은행 관계자는 "예금주가 사망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그 예금주가 무연고 사망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며 "사망한 고객의 예금에 대해선 상속인에게만 지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연고 사망자가 주로 사회복지시설 입소자 등에서 많이 발생되어 시설입소자의 재산가액이 500만 원 이하인 경우엔 간소화 처리 절차도 마련돼있다. 그러나 현수처럼 시설에서 나와 자립 생활을 이어간 경우 적용할 세부 지침은 없다.

법무법인 로운의 정가온 변호사는 "민법에 급박한 사정이 있는 경우 위임이 종료된 법정 대리인이 사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상속사무 처리규정이 있긴 하다"며 "이 조항을 근거로 재산 등을 처리하더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후견인이 보호 받을 수 있는 장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타깝지만 그동안 무연고 사망자의 상속재산이 많지 않다보니, 이런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현수 씨의 사례처럼 복지시설에서 나와 재산을 취득하고 살다 사망하는 경우는 앞으로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이미 2016년에 민법을 개정해 피후견의 사망 이후에도 후견인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을 뒀다"며 "피후견인이 후견인과 생전에 미리 상의해 유언 등을 남기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법원의 감독 하에 후견인이 상속 관련 처리를 할 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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