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미국 동부를 대표하는 사립미술관 '반스 재단'
아트컨시어지 대표
일 때문에 미국을 방문할 기회가 종종 있다. 이번 달도 기회가 있어서 미국 동부의 주요 공연장과 미술관을 다녀왔다. 오늘은 미국 동부에 있는 필라델피아의 한 사립 미술관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반스 재단(Barnes Foundation)이다.
필라델피아의 의사이자 사업가 그리고 미술 수집가인 앨버트 반스(1872~1951) 박사는 1912년부터 필라델피아와 파리를 오가며 예술 작품에 심취했다. 또한 앙리 마티스와 폴 세잔, 오귀스트 르누아르,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화가와 교류하면서 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워 갔다. 그는 사업으로 벌어들인 자금이 수집가에게 얼마나 힘을 실어 주는지 파악했으며, 파리의 수많은 옥션 회사를 통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왕성하게 구입했다.
하지만 정작 그의 고향인 필라델피아 사람들은 정육점 주인의 아들이었던 반스의 안목을 깎아내렸다. 1923년 자신의 컬렉션 중 일부를 펜실베이니아 예술 아카데미에서 전시했으나, 현지의 냉담한 반응과 평론가들의 차가운 시선에 이내 전시는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컬렉션이 혹평받는 것을 경험한 반스는 보다 독립적이고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신의 재단을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문화적 자본이 결핍한 흑인과 노동자 계급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예술이 정신을 개선하고 삶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고 믿었고, 그가 수집한 독특한 컬렉션을 기반으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반스 재단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미술을 보는 방법을 가르쳤다.
현재 반스 재단은 르누아르 181점, 세잔 69점, 마티스 59점, 피카소 46점 등 후기 인상파를 중심으로 약 3000점의 회화와 조각, 장식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는 필라델피아뿐 아니라 미국을 대표하는 사립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르누아르의 경우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 다음으로 많이 소장하고 있다.
특히 반스 재단의 층고가 높은 메인 홀 높은 창 위로 난 3개의 아치에는 마티스가 직접 그린 벽화 ‘춤’이 있다. 흔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시 박물관과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 있다고 알고 있는 ‘춤’이 반스 재단에도 있다. 놀라운 것은 반스의 요청으로 마티스가 직접 필라델피아를 방문해서 제작한 작품이다.
1951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반스는 괴짜 수집가답게 지역의 작은 흑인 대학인 링컨대학에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기증했다. ‘자신이 기획한 그대로 전시를 이어갈 것과 작품의 복원 금지, 판매와 대여 금지 그리고 단일 작품 전시 금지.’ 덕분에 반스 재단의 23개 방(전시실)에는 동서남북 4면이 반스가 의도한 방식대로, 그의 안목으로 소장하고 꾸민 작품이 오늘날까지 전시되고 있으며, 온오프라인으로 여러 미술 프로그램이 꾸준히 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