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늙은 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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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성 수필가

세상 전부가 화려한 생명으로 가득한데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 그런 것을 못 봐요
생명의 환희 같은 걸 가르칠까요
나는 그런 걸 가르칠 겁니다

나는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았고, 나이 많은 여자는 옆 소파에 앉았다. 나는 이 여자와의 대화에서, 이 여자의 손녀를 이 여자에게 보호감호위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를 찾아내어야만 했다. 이 늙은 여자의 손녀는, 환각물질이 든 본드를 흡입하고, 또래의 남학생이 훔쳐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에 동승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고, 이 고목 같이 늙은 여자가 구속된 소녀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늙은 여자는 담배를 꺼내 피웠다. 담배를 낀 손이 파르르 떨고 있었는데, 바짝 마른 손가락 끝의 손톱에는 엷은 분홍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고, 윤기 없이 마른 머리카락에는 바랜 갈색 염색이 묻어 있었다. 길게 그려진 눈썹 밑에는 크고, 어둡고, 깊은 눈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움푹 패인 볼과, 깊은 우물에서 새어 나오는 빛처럼 깊게 느껴지는 눈빛 때문에, 마치 영원의 세상을 바라보는 악령의 얼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댄서였어요….” 늙은 여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어느 봄날 봄바람에 실리어 도회로 흘러들었지요. 그때 누구는 공장으로, 누구는 술을 따르는 술집으로 갔지요. 그런데 나는 고운 음악이 흐르고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는 무도장이 좋았어요. 그래서 댄서가 되었어요.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을 춤추는 호스티스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춤을 좋아하는 댄서였어요. 처음엔 멋모르고 춤을 추었지만, 나중엔 너무 외로웠어요. 매일 밤 남자들을 바꾸어 가며 춤을 추었지만, 그럴수록 댄서들은 더 외로워지지요. 환락(歡樂)은 화려한 껍데기만 사랑할 뿐 아픈 속살은 모르는 체하거든요. 진정 필요한 것은 아픈 속살을 만져 주는 사람인데….”

“서른 살 때쯤인가, 몸이 아파 혼자 유명한 사찰이 있는 마을 여관에서 요양할 때, 내 큰 눈을 좋아하는, 몇 살 위로 보이는 남자를 만났지요.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사랑을 했어요. 내일 같은 것은 없었어요. 생각해 보세요. 댄서에게 무슨 심장(深長)한 내일 같은 것이 있겠어요? 그때 나는, 천대받는 내 직업이나 짧은 가방끈, 출생이나 집안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이란 것을 했어요. 마치 미지의 나라 여왕처럼요! 내일이 없으면 사람이 그렇게 무조건적이 되고,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일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어요.”

“그 남자에게 처음으로 몸을 허락한 장소도 기억합니다. 헤어지고 난 뒤 임신 사실을 알았지요. 댄서가 임신하면 어떻게 되지요? 그렇지만 나는 아이를 낳아 키웠어요, 왜 그랬냐고요? 아무 조건 없이 살면, 내일이 없이 살면, 그러면 모든 생명이 환희(歡喜)가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거요.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비웃었지요. 알고 있어요. 그래서 사는 것이 이 모양이겠지요.”

“아비도 없이 댄서가 키운 자식은 저 손녀만 남기고 죽었는데, 이 어미를 무책임한 인간이라고 저주하면서 그 짧은 일생을 살았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후회도 많이 했지요. 그러나, 사람이 받은 생명을 사랑하고, 내일 같은 것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면, 껍데기 같은 것들에는 연연하지 않는다면, 후회할 삶이 있을까요? 보세요! 세상 전부가 화려한 생명으로 가득한데,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 그런 것을 못 봐요!”

“이 늙은 여자와 가난하게 살아가는 그 아이는 불쌍하지요. 어미조차 가버리고 없으니…. 소년원에서 생명의 환희 같은 걸 가르칠까요? 나는 그런 걸 가르칠 겁니다. 그 아이는…, 내 유골을 내가 처음 몸을 허락한 그 한적한 개울가에 뿌려야 할 아이거든요.” 나는 난감했다. 이 종달새처럼 방종해 보이는 늙은 여자에게 그 손녀의 보호감호를 위탁해야 한다고, 법원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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