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최저임금의 딜레마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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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은 왜 프랑스나 독일이 아닌 영국에서 시작됐을까. 경제학에서 100년 넘게 뜨거운 주제였다. 영국 경제사학자 로버트 앨런은 고임금을 원인으로 설명했다. 영국의 임금은 다른 나라에 비해 4~5배 높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산 효율의 향상에 적극적이었고, 노동력을 절감하는 기계 도입에 앞섰다. 반면 저임금 산업예비군에 안주한 다른 나라는 혁신에 뒤처졌다.

중국은 지역별 최저임금이 다른데 광둥성은 최상위권이다. 국내총생산 비율에서 수십 년째 중국 1위를 차지했던 광둥성은 해마다 두 자릿수로 임금을 올렸다. 문제는 고임금을 좇아 농민공이 광둥성으로 몰리면서 광둥성과 접한 지역은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에 시달린 것.

최근 한국에서는 임금 차등화 논의가 봇물을 이룬다. 강원연구원은 올 초 ‘강원도형 최저임금제’를 제안했다. 최저임금을 낮춰 기업 유인과 인구 유입 효과를 노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원도 인력이 유출될 수 있다거나 유수 기업이 저임금을 노려 올 리 만무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시의회에는 노인 일자리 활성화를 위해 65세 이상은 최저임금을 제외하자는 건의문이 발의돼 세대 차별 논란을 불렀다.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구성돼 5월 중순 첫 회의를 갖는다. 이번에는 ‘시급 1만 원’의 험산도 버티고 있지만, 차등 임금제가 일으킬 삼각파도가 심상치 않을 전망이다. 업종별 차등제는 사문화된 규정이었으나 정부는 ‘돌봄 노동’ 등에 적용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민생토론회에서 외국인 가사·돌봄 노동자 임금 차등화를 제시했다.

최저임금은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익 집단화된 노사 모두 만족하지 않는다. 올해도 장외전부터 뜨겁다. 차등이 ‘차별적이고 위헌적’이라고 노동계는 반대한다. 막판에 노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회의장을 뛰쳐나가는 구태 재연이 불을 보듯 뻔하다. 졸속 심사가 벌써 걱정된다.

앞선 국내외 사례를 보면 임금의 추이는 고차방정식을 따른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뜻밖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개인에게 임금은 생계뿐만 아니라 연금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산업 구조 변화의 요인으로도 이어진다. 그런데 올해 최저임금 심의 시한은 6월 27일로 6주에 못 미친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사회적으로 중차대한 의제가 결정되는 구조다. AI(인공지능)와 로봇이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다. 그에 걸맞게 최저임금을 심의하는 조직과 과정을 혁신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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