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한국 사회 중독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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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과 마약, 지금의 쾌락이 행복일까?

도박 첫 경험 평균 나이 11.3세
초등·여중생까지 도박 수수료 챙겨
청소년 도박 상담 1년 전보다 4배

30대 이하 마약 사범 전체의 59.7%
우울과 스트레스 인스턴트식 해소
“오래 걸리는 것은 중독되지 않는다”

대마초가 합법화된 독일 베를린에서 사람들이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다. 연합뉴스 대마초가 합법화된 독일 베를린에서 사람들이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다. 연합뉴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유명한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27일 만에 쓴 자전적 소설이 〈노름꾼〉이다. 도박중독자인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을 황폐화하는 도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소설 〈노름꾼〉에서는 도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로 “눈앞에 가능성이 있음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라고 설명한다. 도박이 마약보다 중독성이 더 강한 이유가 눈앞의 가능성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왜 중독될까? 인간은 쾌감을 느끼면,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쾌감을 맛본 인간의 뇌는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그렇게 중독이 시작된다. 인간이 느끼는 쾌락의 정도는 초콜릿(55%), 게임(75%), SNS(85%), 성관계(100%), 니코틴(150%), 코카인(225%), 필로폰(1000%) 순이며 단계가 높을수록 중독의 강도가 세진다. 도박과 마약 등의 중독을 피하는 방법은 애초부터 경험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범람으로 이런 중독에 접근이 너무나 쉬운 현실이다. 노력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중독이 한국 사회를 물들이고 있다. 인간을 황폐화하는 중독의 폐해가 청소년까지 확대되는 점은 심각하다.

서울시경찰청이 지난 3월 ‘청소년 도박 근절 릴레이 챌린지’ 캠페인 선포식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경찰청이 지난 3월 ‘청소년 도박 근절 릴레이 챌린지’ 캠페인 선포식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1. 집단 도박으로 부산교육청 진상 조사까지

인터넷 사용이 일상화하면서 온라인 도박 중독 청소년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과거에는 도박을 하기 위해서는 일부러 도박장을 찾아야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도박이 가능해졌다. 국내에 도박 중독에 빠진 숫자만 2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해 9월 25일부터 올해 3월 31일까지 6개월간 ‘청소년 대상 사이버 도박 특별 단속’을 벌여 청소년 1035명을 검거했다. 연령별로는 고등학생이 798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 228명, 초등학생도 2명 포함됐다. 최저 연령은 9세였다. 청소년들이 도박을 처음 경험하는 평균 나이는 11.3세로 집계되고 있다. 부산경찰청은 청소년 대상 사이버 도박 서버를 운영한 중학생 등 114명을 붙잡아 이 중 도박 서버 운영자 20대 A 씨를 도박 공간 개설 혐의로 구속 송치하고, 도박 서버 운영 총책 중학생 B 군 등 11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중학생인 B군은 ‘바카라’와 ‘룰렛’ 등 21개의 도박게임을 개설한 뒤,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게임머니 충전 및 환전 명목으로 돈을 받아 도박 게임을 진행하고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초등학생과 여중생 2명을 포함한 중·고등학생 등 총 98명의 청소년이 돈을 걸고 바카라와 룰렛 등의 도박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한 중학생은 도박 중독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집단으로 온라인 불법 도박인 스포츠 토토를 하면서 부산시교육청이 진상조사에 나섰다.

도박 중독으로 상담받는 청소년도 매해 늘고 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부산·울산센터에서 지난해 진행한 청소년 도박 중독 상담은 450여 건으로 1년 전보다 4배 가까이 급증했다. 도박 중독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부산지역 청소년도 2019년까지 연간 한 자릿수에 머물다 2022년에는 16명까지 늘어났다.

도박은 결국 돈과 관련되어 있다. 친구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친구들의 권유로 자연스럽게 도박에 참여하게 된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행위가 중독이 되고,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해 고리대금, 금품 갈취, 특수 협박 등 범죄로 이어진다. 학업, 가족 및 교우 관계 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게임적 요소의 강렬한 재미와 쾌감, 돈벌이 등이 도박에 중독되는 원인이다.

부산울산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 김정은 센터장은 “친구가 하니깐 따라서 한다는 호기심에서 온라인 불법 도박에 입문하다가 점점 몰입돼 중간 관리자의 역할까지 맡는 등 과거 n번방처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태생적으로 온라인 미디어 세대인 청소년 문화도 이를 가속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터넷에서 도박 정보 습득과 공유, 향유까지 부모나 교사가 따라갈 수 없는 속도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심의와 통제를 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은 가볍게 규제를 넘어서면서 자기들만의 문화로 만들고 있다. 단속에 걸리더라도 ‘나만 억울하게 걸렸다’라고 생각하는 문화도 한몫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불법 도박을 끊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김 센터장은 “도박 중독에 빠진 학생 본인과 학부모, 전문가들의 인식에 큰 차이가 난다”면서 “학부모도 ‘우리 아이는 괜찮겠지’라는 안이함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행동과 통장 계좌 등을 유심히 살펴야 하며 불법 도박에 가담하거나 중독 증상이 보이면 법적인 처벌까지 가는 부분을 인식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 청소년 100명 중 2~3명 “마약 해봤다”

현대의 삶이 쉽고, 빠르고, 편리하게 얻는 것이 이익이라는 생각에서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은 생략돼 버린다. 도박이 돈을 버는 과정보다 얼마 벌었느냐가 중요시되는 세태의 상징적인 단면이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와 외로움, 고독감에서 스스로 극복하기보다는 손쉽게 외적 약물에 의존해 인스턴트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마약 중독으로 이어진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성인과 청소년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마약류를 사용하는 이유로는 즐거움·쾌락 추구 등의 목적보단 우울과 스트레스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또한, 청소년 응답자 100명 중에서 2~3명은 “마약을 해봤다”고 답했다. 중독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약물은 쾌락을 극대화하는 데 그 효능이 있다. 약물에 의해 강하게 유발되는 기쁨은 일상생활에서 얻을 수 없는 느낌이다. 한 번 맛 들이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마약은 재범률이 50%에 육박하고, 국내에서도 잠정적으로 100만 명가량으로 추산될 정도이다.

부산마약퇴치운동본부 김상진 상임이사는 “마약은 시작 한 번이 곧 중독의 길로 접어드는 길”이라고 경고한다. 어떤 환경에서 시작됐든 한 번의 즐거움으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김 상임이사는 “최근 마약 범죄에서 주요한 경향은 연령의 하향화”라면서 “조금이라도 일찍 예방 교육을 받아서 마약의 위험성을 인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이제 ‘청소년 마약’까지 걱정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실제로 30대 이하 마약류 사범이 전체의 59.7%를 차지한다. 2012년 30대 이하 마약사범 비율은 35.5%였으며, 5년 후인 2017년은 42%로 6.3%포인트 증가한 반면, 최근 5년간은 18%포인트 증가하였다. 2022년 19세 이하 마약류사범은 전체 마약사범의 2.6%, 481명으로, 2012년 38명 대비 12배, 2017년 119명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20대 마약류 사범은 2000년 1658명에서 2023년 8368명으로 5배 이상 늘었다. 10~20대 마약류 사범의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성장기 청소년 마약류 범죄는 정신적·육체적·사회적 손실을 불러온다.

마약도 도박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흐름과 깊은 연관이 있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중독학과 학과장인 홍성민 신부는 “중독은 쾌감의 보상이 빨리 나는 특징이 있다”면서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현대인들은 기다리기보다는 편리하게 즉각적으로 쾌락을 얻는 것에 매료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신부는 “중독에 빠지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삶 전체의 변화 없이는 치유가 불가능하다”면서 “근원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다른 데서 쾌감이나 혹은 만족감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독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래 걸리는 것은 중독되지 않습니다!” 중독 문제를 연구해 온 홍 신부의 작심 발언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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