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반대’와 함께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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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사회 전체가 생각의 양극화 뚜렷
이번 총선 결과 통해서도 입증

토론과 협의는 없고 싸움만 난무
2030세대 정치 무관심 부채질

사상 달라도 서로 존중·협력하는
제대로 된 토론 교육 필요한 때

올해 초 한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였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라는 예능인데, 설정이 매우 파격적이다. ‘정치, 젠더, 계급, 사회윤리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12명의 젊은 남녀가 9일 동안 리더를 선발하고 상금을 분배하는 정치 서바이벌 사회실험’이 프로그램 취지다. 가령 좌파와 우파, 페미니즘과 이퀄리즘(평등주의), 서민층과 부유층 등 극단적으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을 한 데 모아놓고 토론하게끔 하는 프로그램이다. 생각만 해도 뭔가 답답하고, 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외로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가는 장면들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는 사람이 많았다. 입소문을 타고 급부상한,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예능이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가깝게 지낼 수 있을까? 대학을 가고, 사회에 나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와 다른 결의 사람은 왠지 피하게 된다는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혹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생기거든 정치나 종교 얘기는 함부로 입에 담지 말라는 조언도 많이 들었다. 다른 의견을 가졌을 때 수용 받는 경험도, 누군가를 수용하는 경험도 좀처럼 하기 힘들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모아놓고 대화를 나누게 한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꽤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그럴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2030 청년층은 양극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2022년 대선 당시 20대 남성의 보수화와 20대 여성의 진보화가 메인 화두였다. 이번 달에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있었다고 정치평론가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심지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30대의 사전투표율은 50·60대에 비해 10% 이상 낮게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정치 자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다른 세대에 비해 높지는 않은데, 양극화는 뚜렷한 상황이다.

단순히 평론가들의 분석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 양극화를 현실에서 체감할 만한 순간도 꽤 많았다. ‘이대남’과 ‘이대녀’ 등 성별에 따라 이념 대립이 뚜렷한 편이다. 그리고 사는 지역과 경제적 상황에 따라서도 성향이 나뉜다. 문제는 정치 성향은 다를 수 있지만 다 함께 모여 토론하거나 유의미한 합의점을 도출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2030 청년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양극단으로 나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대안 없이 서로 심판만 한다. 이번 총선을 치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대안을 가지고 오지는 않고, 거대 양당 둘이서 싸우기만 한다. 그 분열의 산물로 제3 정당들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 역시 매끄럽지는 않았다. 총선을 앞두고 어떤 정당을 찍어야 할지 공부할 겸 뉴스를 틀고 기사를 읽어 보고 토론회들을 보았지만 금방 피로해져 질리고 말았다. 토론이 부재한 자리에 싸움만 남아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어떻게 대화하면 좋을지 모른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갈등하느니, 차라리 피해버리는 게 낫다고 모두들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현실 세계에서 이들이 대화를 나누지 못하면 논쟁은 자꾸 음지로 숨는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는다.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나보다 힘없는 약자에게 튄다. 그런 뉴스를 지금도 많이 접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토론 교육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의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런 의견을 듣고 건강하게 반박해 보고, 또 수용할 것은 수용할 줄 아는 자세. 이런 걸 누군가가 알려주면 좋겠다. 애석하게도 그렇게 대화하는 방법을 공교육 과정에서 배우지는 못했다. 만약 어렸을 때부터 이런 교육이 시작된다면, 국회에 있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아주 많아질 것이다. 부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아주 조금이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어볼 수 있지 않을까.

‘사상검증구역’ 예능에서는 출연자들이 한 공간 커뮤니티에 생활하며 세금도 징수하고 대표도 선출하는 모습들이 연출됐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한 나라를 꾸려갔다. 낮에는 공동체 게임을 하고 밤에는 첨예한 주제를 놓고 익명으로 토론한다. 이들은 같이 생활하는 동안 자신이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들켜서는 안 되는 규칙 안에서 존재했다. 이 과정에서 절대 말을 섞어보지 못할 것 같은 두 사람이 협력하는 모습들이 있었다. 사상보다는 한 인간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국 이게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상은 달라도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그런 대한민국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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