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세월호 10주기가 던지는 질문
안전한 사회, 참극 없는 나라… 남겨진 자의 염원은 이뤄졌나
수차례 공적 기구 조사에도 불구
참사 총체적 진실 밝히는 데 실패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안 돼
이후로도 대형 사고 끊이지 않아
정부 안전관리 능력 부실 논란
독립된 컨트롤타워 필요성 제기
심리적 고통 시달리는 피해자들
정부, 되레 치료비 지원 축소 방침
재난 관련 심리 치료는 국가 책무
팽목항. 목이 메는 이름이다. 불러도 불러도 응답 없는 이들의 아우성이 환청으로 나부끼는 현장이다.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삶은 그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유족들만 그런 게 아니다. 무참함을 지켜본 국민들 대다수가 그렇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나. 10년 세월이 남긴 세 가지 질문을 통해 되돌아본다.
1. 진상 규명은 이뤄졌나
그날의 진실은 여전히 미궁이다. 원인 규명 작업은 출발부터 흔들렸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참사 205일 만에 출범했는데, 수사·기소권이 없었고 인력·예산은 부족했으며 관련 기관 협조는 제한적이었다.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2017년, 세월호가 인양되면서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가 출범했다. 목표는 침몰 원인을 밝히는 것. 그런데 선체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내인설’과 외부 충격에 의한 ‘외력설’을 동시에 제시한 채 역시 결론을 내지 못했다. 2018년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기록을 넘겨받아 3년 반 동안 추가 조사를 벌였다. 또다시 내부 이견이 팽팽히 충돌했다.
일단 침몰의 직접적 원인은 분명하다. ‘배가 좌현으로 기울어 제대로 고박되지 않은 화물이 쏠리면서 선체가 복원성을 잃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기술적 한계 때문에 확증되지 못했다. 사참위가 제기한 해군·해경의 세월호 CCTV 데이터 조작 및 DVR 바꿔치기 의혹도 2021년 특검 수사 결과 ‘증거·혐의 없음’으로 결론 났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니 참사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 청해진해운 관계자는 실형에 처해졌으나, 해경의 경우 6급 공무원 2명만 유죄가 선고됐을 뿐 지휘부는 무죄 판결을 받고 면책됐다. 정권이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 특조위, 선조위, 사참위, 특검과 검찰 특별수사단 등 공적인 조사 기구가 여러 차례 구성됐음에도 속 시원한 진상 규명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한편 이런 목소리도 있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나 참사 순간의 세부적 사실관계 파악에 너무 매달렸다는 것. 그 때문에 결함 있는 배의 출항이라든지 해경의 구조작업 실패 같은 참사 전후의 총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이 더 힘겨워졌다는 관점이다.
유족들은 납득할 만한 근거만 있다면 어떤 결정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역 없는 조사가 더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통령 기록물을 비롯해 해경 레이더 영상, 국가정보원 사찰 정보 같은 미공개 자료가 완전히 공개돼야 한다고 유족들은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2. 사회는 얼마나 안전해졌나
“대형 사회재난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최근 동아대 긴급대응기술정책연구센터의 재난안전인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이렇게 대답했다. 국민들은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가 재난 관리와 안전 대비에서 별반 나아진 게 없다고 보는 것이다. 되레 응답 비율은 4년 전 조사 때보다 11.5%P나 높아졌다. 왜 그런 걸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 비극이 끊이지 않아서다. 불과 이태 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이태원 참사의 기억은 생생하다. 위기 앞에서 또다시 정부의 무기력이 드러났고, 159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인파 밀집 사고의 예방과 사후 대응에서 모두 실패한 인재로 기록된다.
돌이켜보면, 안전 불감증이 낳은 대형 참사는 최근까지 한시도 끊긴 적이 없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9명 사망), 2018년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47명 사망), 2020년 경기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38명 사망), 2023년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14명 사망) 등등. 그때마다 당국의 통제와 대처는 부실했고, 관련 매뉴얼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며, 예방이나 교육은 있으나 마나였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어서 초량 지하차도, 학장천 산책로 등지에서 안타까운 인명사고가 잇달았다.
이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탄생한 재난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을 못 했다는 방증이다. 2014년 해경·소방 기능을 흡수해 재난안전 분야를 총괄하는 국민안전처가 신설됐다. 하지만 2년 8개월 만에 간판을 내렸고, 이후 이를 이어받은 재난안전관리본부가 행정안전부에 설치됐다. 본부장은 행안부 차관급인데 현재로선 안전 관련 최고 직급이다. 국무회의 참석이 불가능한 구조에서 재난안전 대책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지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정확한 사고 원인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도맡는 별도의 독립기구 설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재난 대응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에 방점을 찍는다. 사고 수습이나 복구도 중요하지만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재난 예방과 대비에 70%를, 대응 복구에 30%를 투자한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는 정반대 비율에 머물러 있다.
3. 마음의 상처는 아물었나
10년이라는 세월이 길어 보여도 심리적 고통을 치유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세월호 유족들은 대부분 조현병과 우울증, 자살 충동의 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 진상 규명에 매진하다 보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 지원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으니 냉혹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세월호 피해 지원 특별법’에 따라 유족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해 왔다. 지급 기간은 시행령에 따라 ‘2024년 4월 15일까지’로 정해져 있다. 정부가 시행령을 새로 고치지 않으면 의료비 지원은 올해로 끊기는데, 형평성 문제와 재정 건전성 때문에 지원 연장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한을 고치는 법안이 21대 국회에서 발의되기도 했으나 논의가 미뤄져 자동폐기 직전이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피해자들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2090년까지 지정해 사실상 평생을 보장한다. 국가 재난으로 발생한 트라우마 치료에 기간을 두는 것 자체가 사회적 책무의 방기에 가깝다. 참사 피해자에 대한 장기적 지원은 선택 아닌 필수여야 한다는 뜻이다.
재난으로 인한 마음의 속병은 신체적 장애보다 후유증이 길다. 정상적인 애도와 트라우마 치료 과정을 거치지 못한 참사 피해자들은 더 그렇다. 트라우마는 3년, 5년, 10년을 주기로 가중되고 그때마다 숨어 있던 것이 터져 나온다고 한다. 전문적인 심리 치료를 통해 이들의 고통을 보듬는 정책 지원이 그래서 중요하다. 여기에는 유족은 물론 참사를 목격하거나 구조에 투입된 사람을 비롯해 인근 거주민 등도 포함될 수 있다.
앞서 제기된 세 가지 질문은 국가적, 범국민적 자성과 성찰을 전제로 한다. 우리의 시선은 늘 해결해야 할 숙제, 미흡한 실천들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월호 10년’은 고통의 시간이었으나 많은 걸 바꿔 놓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후의 사회적 재난을 바라보는 하나의 기준이 됐고, 재난에 더 신경 쓰고 안전 문제에 더 민감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린 이들이 바로 유족들과 참사 피해자들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덕분에 우리는 어렵게나마 한발 한발 나아간다. 더 이상의 참극이 일어나지 않는 소망의 사회를 향해.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