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노년 유권자의 냉철한 판단이 절실한 이유
논설실장
여야 총선 공천 국민 눈높이 못 미쳐
정치 혁신 바라는 민심 외면한 처사
고령화로 노년층 유권자 비중 커져
옥석 가려낼 노인층 역할 매우 중요
인물과 자질 중심 신중한 선택 필요
참일꾼 뽑는 어른다운 모습 보여야
제22대 총선이 27일로 사전투표까지 불과 9일, 본투표까진 14일 남았다. 28일부터는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4·10 총선 후보는 전국 254개 지역구에 699명이 등록해 2.8 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각 당의 득표율과 자체 순번에 따라 정해지는 46개 의석을 놓고 경쟁하는 비례대표 후보의 경우 38개 정당에서 모두 253명을 추천해 평균 경쟁률이 5.5 대 1에 이른다.
이들 중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후보가 꽤 많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역구 후보 가운데 무려 34.6%가 전과자라는 것이다. 음주운전, 사기, 횡령, 상습 체불 등 죄질이 나쁘거나 다수의 전과가 있는 후보가 적지 않아 충격적이다. 비례대표 후보도 25%가량은 전과자다. 이들이 공당의 면죄부를 받아 출마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여야가 당초 국민의 정치 불신을 의식해 인적 쇄신을 통한 정치 혁신을 꾀하는 등 시스템 공천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탓이다. 막말을 일삼거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철저한 검증 없이 경선 기회를 주고 공천까지 했다. 결격 사유가 드러나 민심이 나빠진 뒤에야 마지못해 공천을 취소한 일도 있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인물 됨됨이와 경쟁력보다는 각각 친윤(친윤석열)·친명(친이재명)계 후보 공천에 열을 올리면서 부실 검증이 빚어진 결과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처사다.
이제는 유권자의 시간이다. 여야 후보들을 면밀하게 살펴 냉철한 판단으로 옥석을 가리는 게 유권자들의 몫이다.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 부적격 후보를 걸러내고 참된 일꾼을 국회로 보내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 전체 유권자의 31.4%를 차지하는 60세 이상 노년층 유권자의 역할과 사명감이 특히 중요하다. 이번 총선의 노년 유권자 비중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 현상 속에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18~19세와 20·30대를 합친 유권자 비율 31.2%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총선의 향방이 60대 이상 연령층의 투표 상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역대 각종 선거에서 통상 노인층 투표율이 젊은 층에 비해 훨씬 높았던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노년층의 한 표 한 표가 매우 중요해졌다. 노년층에게 여느 선거 때보다 신중한 판단과 올바른 선택이 요구되는 이유다.
노년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을 기해 안정된 노후를 위한 일자리 확대, 각종 지원금 증액 등 다양한 복지책을 여야에 요구하고 있다. 내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1000만 명)를 넘어설 전망인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년층이 노인복지 정책과 공약에 관심이 큰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노인층의 45.6%가 빈곤한 데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빈곤율이 상승한다는 최근 보건복지부 발표가 나온 터다. 한국 노인 빈곤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상위권이며 극단적 선택과 고독사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건 익히 알려진 바다. 따라서 노인복지 정책과 공약에 대한 허실을 잘 따져보는 게 바람직하다. 여야와 후보들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한층 커진 노년층 표심을 노려 실행이 어렵고 나라 곳간 사정을 무시한 사탕발림식 대책을 무분별하게 쏟아낼 공산이 커서다. 노년층 구미에 맞더라도 꼼꼼히 검토해 선심성·포퓰리즘 공약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노년 유권자들이 현명하고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고물가·고금리에다 저성장 장기화, 청년 취업난, 세대 갈등, 저출생 등으로 온 국민의 삶이 힘들고 국가 존립마저 위태로운 시기다. 노인 권익만 챙겨선 어르신 대접을 받을 수 없다. 각 당과 후보들이 다른 연령층과 현안 해결을 위한 공약도 제시하고 지역과 국가 발전의 비전을 갖고 있는지도 점검해 투표에 반영해야만 어른답다고 할 수 있겠다.
진영논리를 앞세운 여야가 “정권 심판” “제1야당 타도”를 외치는 정치 바람에 동조하거나 혈연, 지연, 학연 같은 친소관계에 빠져 ‘묻지마’ 투표를 한다면 고착화한 거대 양당제의 폐해를 줄일 방도가 없다는 사실도 명심할 일이다. 앞으로 친윤·친명계와 부적격자가 대거 당선된다면 21대 국회보다 격렬한 정쟁은 불 보듯 뻔하다. 여야가 민생고와 경제난은 안중에도 없이 당리당략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극심한 대립과 충돌을 지속하며 일하지 않는 행태가 심해질까 우려된다.
노년 유권자들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경험과 연륜에 걸맞은 판단을 내릴 때가 이번 총선이다.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을 유심히 보고 인물 본위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수많은 특권을 누리며 군림하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민의를 잘 대변하고 지역 발전과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성실한 일꾼을 뽑아야 한다. 여기에 노년층이 귀감을 보여야 한다. 정치권이 유권자를 진정 두려워하는 풍토와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길이다. 이게 정치 개혁일 테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