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총선 D-30, 소멸이 소멸되다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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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콘텐츠랩 본부장

부산 한 초등학교 입학생 7명 그쳐
제2의 도시도 ‘지역 소멸’ 징후 뚜렷

‘세계 최고 병원’ 250위 부산은 전무
국내 병원 17곳 중 16곳 수도권 집중

4·10 총선 정쟁 속 지역 의제 실종
균형발전 의지 ‘선택’ 잣대로 삼아야

남자아이 넷, 여자아이 셋. 모두 일곱 명이 입학했다. 전교 1학년생을 몽땅 합쳐 7명이다. 시골 어느 마을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입학철 부산 변두리 지역 한 초등학교 풍경이다. ‘지역 소멸’은 무슨 촌구석에만 해당되는 현상이 아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구·군에서도 소멸 징후가 뚜렷하다.

올해 세계 최고 병원 순위에 부산지역 병원은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최근 꼽은 ‘2024년 세계 최고 병원’ 250위에 국내 병원 17곳이 포함됐다. 서울의 이른바 ‘빅5’ 병원을 비롯해 수도권 병원 16곳이 순위에 들었다.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수도권 큰 병원은 순위권에 다 포함됐다는 말이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선 대구가톨릭대병원 단 한 곳이 겨우 이름 올렸다. 그것도 국내 병원 17곳 가운데 맨 마지막 순위로 전체 235위를 기록했다. 근근이 250위에 턱걸이한 것이다. 도대체 우리의 지역 병원 수준은 이것밖에 안 되나.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기막히고 답답한 마음에 궁금증이 커졌다. 뉴스위크가 홈페이지에 따로 공개한 국가별 순위 자료를 살펴보니 지역에서 가장 이름난 병원들은 국내 병원들 가운데 20~30위권을 형성했다. 도토리 키 재기 하는 듯하다. 부산·울산·경남에서 순위가 가장 높은 부산대병원은 국내 29위에 머물렀다. 부울경에선 동아대병원(34위), 인제대해운대백병원(37위), 양산부산대병원(40위), 울산대병원(44위), 인제대백병원(48위), 국립경상대병원(54위), 국립경상대창원병원(55위), 고신대병원(62위) 등이 뒤를 잇는다. 미국 언론의 평가가 절대적이진 않다. 그러나 객관화된 평가 지표로 점수를 산출해 순위를 매겼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형편없진 않을 것이다. 신뢰도를 떠나 해외 언론 평가에서도 어김없이 대한민국 지방과 수도권 격차가 극명하게 확인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2020년 7월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전체 인구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국토 면적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26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빽빽이 뒤엉켜 사는 서울공화국이다. 서울과 주변은 ‘초집중’ ‘초과밀’로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공간으로 치닫고, 지방 또는 지역은 사람이 점점 사라지는 ‘소멸’의 구렁텅이가 돼 간다. 나라가 극도로 상반된 두 쪽으로 쪼개져 비정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꼴인데도 위정자들은 태연하다. 그다지 위기 의식이 없어 보인다.

4·10 국회의원 선거가 30일 앞으로 다가왔다. 소멸의 길로 빠져든 지역의 박탈감과 불안을 떠안아야 할 정치판은 지역에 무관심한 듯하다. 총선에서 지역 소멸이라는 의제가 소멸됐다. 요동치는 공천 정국에서 ‘검찰 독재 심판’ ‘운동권 청산’ ‘용산 특권’ ‘비명횡사’ 등의 온갖 공방이 난무한다. 정치적 공방 틈바구니에서 지역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한민국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인 부산은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교육 붕괴’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대입 재수도 서울서 해야 한다는 세상이다. 지역 대학 위상은 말이 아니다. 지역 인재를 길러내는 지역 교육 시스템이 소멸될 위기다. 지역의 문화 여건은 좋았던 적이 없다. 많은 지역민들이 자신이 사는 곳을 문화 불모지로 비하한다.

‘의료 소멸’도 눈앞에 맞닥뜨린 현실이다. 부산에서 사고를 당한 현역 야당 대표가 부산 응급의료 시스템을 외면한 채 곧장 서울로 향하는 게 이 나라 현실이다.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최고 병원을 보면 수도권에만 최우수 병원이 쏠린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가까운 일본은 세계 250위 이내 병원 15곳 가운데 8곳만이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있다. 나머지 7곳은 지역 병원들이다. 규슈대병원 나고야대병원 교토대병원 오사카대병원 등 주요 지역 국립대 병원 등이 당당히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 유럽 등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함부르크, 스위스 로잔, 덴마크 오르후스, 프랑스 릴 보르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로테르담,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이탈리아 볼로냐 등 각국의 수도가 아닌 지역에서도 세계 250위권 안의 베스트 병원들이 가동되고 있다. 지역 교육과 문화 의료 경제가 장기적 소멸 위기로 나아가면서 지역민의 자존감도 시나브로 옅어진다.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총선판에서 지역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현 정부는 출범 당시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 지역균형발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지역과 균형발전을 위해 아직 이뤄진 건 아무것도 없다. 지역 소멸에 대한 관심이 소멸된 총선. 어느 후보, 어느 정당이 지역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 선택의 순간까지 유심히 관찰해야 할 포인트다.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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