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끊긴 뱃길, 발상의 전환으로 돌파하라
논설위원
부산~제주 항로 1년 넘게 단절
고유가 등 여파… 사업자 안 나타나
여러 차례 운항 중단·재개 반복해
여행객 불편하고 항구 이미지 타격
남해안 거점 운항 크루즈선 통해
바닷길 활성화에 적극 나서길
‘가슴이 답답해서 찾아왔네 마음이 울적해서 또다시 왔네/ 싱싱한 파도 소리 상큼한 바닷내음 여기가 부산항인가/ 갈매기 바라보며 아무리 생각해도/ 항구의 일번지는 부산이 아니냐/ 사랑의 일번지는 남포동이 아니더냐.’ 1980년대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그룹 강병철과 삼태기의 ‘항구의 일번지’라는 노래 가사 일부다.
노래 속 항구 일번지는 부산항을 가리킨다. 한데 요즘은 이 말이 좀 무색해진다. 부산~제주 여객선이 끊긴 지 1년을 훌쩍 넘기고 있어서다. 지난 2022년 12월부터 시작된 2만 톤급 여객선 뉴스타호 운항 종료 이후 새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여객 수요는 조금씩 늘고 있지만 중고 선박 품귀, 저비용 항공사들의 시장 잠식, 고유가로 인한 채산성 악화 등 부정적 요인들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탓이다.
동북아 허브항만인 부산항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혹자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부산과 제주를 오갈 수 있는 시대에 여객선 단절이 무슨 대수냐고 한다. 이러다가 곧 새 여객 사업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을 하는 이도 있다. 이 항로는 여러 차례 운항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부산~제주 여객선 뱃길은 1977년 4월 3000톤급 동양고속 카페리 1호, 6월에 카페리 2호가 취항해 전성기를 맞는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부산연안여객터미널은 한때 제주 노선 등 11척의 배가 운항하면서 한 해 100만 명이 넘는 이용객들로 북적였다. 그땐 ‘부산항은 항구의 일번지’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시민들은 해양수도 부산, 항구도시 부산에서 제주행 여객선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한다. 실제 부산에서 출발하는 유일한 연안 항로인 제주 뱃길이 장기간 끊기는 바람에 자신의 승용차나 오토바이를 타고 제주를 관광하려는 여행객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제주행 뱃길이 오랫동안 끊어져 있는 것은 부산항 이미지에 타격이 크다. 부산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관광 콘텐츠 제공 차원에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지역 관광업계도 부산~제주 항로는 우리나라 연안 항로 중 대표 격이라 할 만한데, 여객선이 1년 넘게 없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부산해양수산청이나 부산항만공사(BPA), 부산시가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저비용 항공, 고유가 시대에 적자를 보면서까지 여객선을 띄우겠다고 선뜻 나서는 선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도 없다. 하루빨리 부산~제주 뱃길을 되살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객선 운항이 지속되려면 임시방편식 찔끔 처방이나 땜질식 지원만으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부산~제주 뱃길의 부침(浮沈)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관련 기관들은 대체 선사를 구하고, 부산시와 제주도는 또다시 운항이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선사 측의 경영 압박을 줄여 줄 수 있는 다각적이고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다고 여객선 재개를 꼭 고집할 필요는 없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크루즈선을 띄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부산~제주 간 여객선에서 벗어나 부산~통영~삼천포(남해)~여수~목포~제주를 잇는 남해안 연안 크루즈 상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남해안 연안 크루즈는 지역 관광과 경제에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블루오션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규모 투자와 비용이 들어가기에 국가나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해양도시 부산은 필연적으로 바다를 지렛대로 산업을 키워나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부산시가 총대를 메고 한 발 더 앞서 나가는 지원과 정책을 통해 부산~제주 뱃길 활성화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물론 부산시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관광도시의 위상 정립을 위해 부산국제여객터미널의 해외 노선 개척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된다. 관광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느림의 미학은 존재한다. 인스턴트식품이 대세지만 숙성된 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나름의 존재를 갖는다. 항공기를 이용한 여행도 좋지만, 느림의 미학을 찾고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여행을 즐기는 낭만도 필요하다. 그 한가운데 크루즈가 있다. 빠르게 둘러보고 오는 관광만이 여행의 전부는 아니다.
김순남 작곡의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의 노랫말 가사는 ‘안개 짙은 부산항에/ 연락선은 떠나려는데’로 시작된다. 부산~제주 뱃길 항로가 어떤 형태로든 부활하기를…. 제주행 항로의 뱃고동 소리가 그립다. 해양도시라는 부산의 정체성은 부산항이라는 장소를 통해서 구축돼 왔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