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이탄희’를 응원한다
선거제 두고 흔들리는 민주당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 버리고
과거 병립형으로 회귀 움직임
지도부 “명분보다 실리” 주장
“정치혁신의 취지 훼손” 비판
‘원칙·약속 지키는 정치’ 돼야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과는 일면식도 없거니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지향하는지 아는 바가 없다. 그럼에도 ‘이탄희’를 응원한다. 여기서 ‘이탄희’는 일개 정치인으로서 이탄희에 그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는 ‘그의 간절한 호소’를 응원한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이 의원은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선거법만은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이때 선거법은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이하 준연동형)다. 준연동형 고수를 주장하는 이는 이 의원 외에도 많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준연동형이 유지돼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의원처럼 자신의 정치적 자산과 가능성까지 내걸고 준연동형 사수에 나선 이는 아직 없다. 그래서 ‘이탄희’를 응원한다.
민주당이 준연동형을 놓고 흔들리고 있다. 이재명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당초에는 내년 총선도 준연동형으로 치른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 대표 스스로도 준연동형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병립형 비례대표제’(이하 병립형)로 입장을 정리하자 민주당 지도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병립형으로의 회귀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또다시 위성정당을 만들 가능성이 큰 형편에서 현행 준연동형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내에선 병립형 회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속출하고 있지만, 명분보다는 총선 승리라는 실리를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당 주류의 생각인 듯하다. 이는 지난 14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내년 총선에 적용할 비례대표 배분 방식을 논의하자고 열린 의원총회였으나, 난상토론만 벌어졌을 뿐 뚜렷한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병립형은 의석수와 상관없이 선거 결과 나타난 정당득표율만큼 비례대표 의석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정해진 비례대표 의석이 총 50석이고 A 정당이 5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면 25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가져가는 것이다. 이 경우 A 정당이 획득한 지역구 의석은 별도다. 따라서 거대 정당이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 의석까지 대거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연동형은 정당득표율만큼 의석을 얻지 못했을 경우 비례대표에서 득표율만큼의 의석을 보충해 준다. 준연동형은 이렇게 배분하는 비례대표 의석에 일정한 한계를 설정한다. 지역구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하더라도 정당득표율만 어느 정도 얻으면 의석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정당의 원내 진입에 유리하다.
2016년 총선 때까지 적용되던 병립형을 2020년 현행 준연동형으로 바꾼 데는 이유가 있다. 거대 정당 위주의 승자독식 구조를 뜯어고쳐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만듦으로써 정치혁신의 발판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요컨대 병립형으로의 회귀는 그런 정치혁신을 향한 발걸음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우리 정치가 그만큼 퇴행하는 셈이다.
현행 준연동형의 문제는 위성정당이다. 2020년 총선 때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의석까지 대거 확보하는 편법을 동원했고, 민주당도 그와 다를 바 없는 행동으로 같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정치혁신의 취지를 거대 양당 스스로가 훼손한 것이다.
그래서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게 위성정당 방지책이다. 이 의원은 총선 이후 2년 이내에 거대 정당과 위성정당이 합당할 경우 국고보조금의 50%를 삭감하는 내용을 담은 정치자금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그게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정치혁신을 위해 정치권이 약속했던 준연동형을 지켜야 한다는 이 의원의 주장은 정당하다.
대선 후보 시절 ‘위성정당 출현 방지를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공약했던 이재명 대표는 최근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말을 바꿨다. 그에 대해 이 의원은 “멋없게 이기면 세상을 못 바꾼다”고 응수했다. 두 사람 중 누가 옳은가. 판단은 각자 다르겠지만, ‘국민에게 약속한 정치혁신 약속을 이렇게 쉽게 폐기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은 던질 수 있겠다.
정치혁신 같은 거창한 그 무엇도 좋지만, 그에 앞서 원칙과 약속이 지켜지는 정치를 보고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꼼수나 편법 따위에 한 번은 속아도 두 번은 속지 않을 지성을 갖고 있다. 이를 믿는 제2, 제3의 ‘이탄희’가 계속 나와 우리 정치권의 주류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