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신춘문예] 영광의 당선자를 만나다
영광의 당선자를 만나다
문학은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었다. 삶의 궤적은 저마다 달랐다. 때론 아픔과 절망이 다가왔고, 때론 치유와 희망의 꽃이 피었다. 그들의 예민한 촉수는 삶의 신산한 풍경을 문학의 창으로 끌어들였다. 그들은 '2012 부산일보 신춘문예'란 명예의 전당에 든 당선자 8명. 새해, 누구보다 가슴 벅차고 희망으로 부풀었으리라. 이들의 곡절 많은 삶과 사연 속으로 들어가 봤다.
소녀는 시를 유독 좋아했다. 좋은 시가 있으면 수첩에 적어서 암송하곤 했다. 소녀는 자주 눈물을 흘렸다. 원인도 알 수 없었다. 우울증. 이런저런 취미생활도 해봤지만, 효과는 없었다. 밖에서 더 많이 떠들고 웃고 집에 돌아오면 마음은 더 공허해졌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다가 시를 만났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2004년 시를 쓰고부터 우울증이 사라졌다. 시는 치유의 묘약이었다.
2012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허영둘(56) 씨. "한 줄 한 줄 쓸 때마다 묘한 환희가 느껴졌어요. 적합한 시어를 찾기 위해 몰입하다 보니 우울증과 잡념이 사라졌죠.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 수 있는 시가 참 매력적이에요. 여리고 힘없는 존재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담은 시를 쓰고 싶어요."
소설 당선자 이병순(48) 씨. 대학 졸업 후 20여 년간 논술지도를 해왔다. 여유만 생기면 도서관에 갔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3년 전 그는 문득 자신의 꿈을 떠올렸다. 소설 쓰기. 대학 시절 습작 소설을 써 봤다. 학과장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좋다'며 소설 쓰기를 권했다. 그는 2008년 본격 습작을 시작하며 오랜 꿈을 찾아 나섰다. 그 뒤 김성종 추리문학관에서 문학강좌를 들었다. 지난해 서울을 오가며 윤후명 소설가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소설의 매력은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는 점이죠.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심리학, 철학보다 쉽게 전달해요. 제가 소설을 쓰고 싶은 가장 절실한 이유죠."
수필 당선자(가작) 류현서(60) 씨도 젊은 시절 아픔을 겪었다. 23세에 결혼한 그는 15년간 아이를 갖지 못했다. 병원도 다녀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숱하게 눈물을 쏟았다. 출산을 포기하려는 순간 임신했다. 기나긴 절망의 시간 끝에 찾아온 희망. 하지만 젊은 시절 고통은 평생의 트라우마가 됐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 펜을 잡았다. 그는 "곡절 많았던 젊은 시절의 체험을 녹여 희망을 전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시조 당선자 황외순(44) 씨는 20년간 미용실을 운영해왔다. 지금은 미용실을 잠시 접은 상태다. 예전 미용실은 공장 지대에 있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주 고객. 파키스탄 출신 20대 노동자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단골이었던 그는 5~6개월간 미용실을 찾지 않았다. 손가락 두 개가 프레스기에 절단됐기 때문. 사연을 들은 황 씨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자 노동자는 환한 웃음을 지었단다. 잘린 손가락 두 개로 부모님, 동생에게 집과 PC를 사 줘서 너무 행복하다고. 황 씨는 "힘들게 살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나 자신을 벼렸다"고 했다.
동시 당선자 주미경(43) 씨는 자녀를 데리고 동시 낭독을 자주 했다. 아이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게 됐다. 2008년엔 아동문학 작가학교 6개월 과정을 수료하며 실력을 다듬었다. "동시의 매력은 시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어린이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죠. 두 가지를 잘 버무려내는 과정이 좋은 동시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동화 당선자 정수연(42) 씨는 독서지도사. 학창시절 글짓기 대회 장원을 도맡아 했다. 직업상 아이들의 심리를 들여다볼 기회가 많았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더 똑똑하고 생각도 깊어요. 어려움 속에서 적극적으로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희곡 당선자 정소정(30) 씨는 지난해 부산일보 신춘문예에서 가장 행복한 낙선자였다. 최종심에 갔던 작품 '가을비'가 공연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윤택 심사위원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며 연희단거리패 공연에 올렸다고 한다. 그는 전문 극작가 길을 걷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라는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강렬한 스토리와 시적이고 투명한 언어가 결합한 작품을 쓰고 싶어요."
평론 당선자(가작) 김형석(24) 씨는 청일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학비, 용돈을 버는 건실한 대학생 청년이다. 제대 후 신춘문예의 문을 처음 두드렸단다. 군대에서 자아와 세계의 유기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그때 생각과 '88만 원 세대'로서의 현실이 어우러진 작품을 이번에 응모했다. 그는 "사회성이 짙고 시의성이 있는 평론을 쓰겠다"고 했다.
이번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는 여성 7명, 남성 1명이었다. 부산 출신이 4개 장르에서 나왔다.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