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원의 유행 너머] 돌아온 매직홀
경제부 기자
2~3년 전만 해도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바지를 올여름 새로 샀다. 무릎 아래 종아리에서 뚝 끊기는 딱 붙는 6부 바지, ‘카프리 팬츠’다. 한 벌 사고 보니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 요즘 꽤 잘 입고 다닌다.
2000년대를 소환한 ‘Y2K’ 열풍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복고의 시계는 벌써 2010년대로 넘어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2026 이즈 더 뉴 2016’이라는 문구가 유행하고, 10년 전 사진과 스냅챗 필터, 초커, 매트 립, 포켓몬고와 마네킹 챌린지가 다시 소환됐다.
걸그룹의 콘셉트도 빨라진 복고 유행 주기를 보여준다. 키키의 신곡 ‘팝 오프 팝 오프’에서는 2010년대 초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셔플댄스를 추고, 앨범에는 아예 ‘캔디 핑크 매직홀 플립 폰’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실었다. 제목에 등장하는 ‘매직홀’은 2010년을 전후해 인기를 끈 삼성전자 폴더폰이다. 키키가 노래와 프로모션에 매직홀을 등장시키자 중고 사이트에서도 오래된 매직홀 휴대폰이 매물로 등장해 거래되고 있다.
패션계에서는 유행이 약 20년을 주기로 되풀이된다는 ‘20년 법칙’이 있다. 그런데 2026년에 2016년을 그리워하는 지금은 20년도 길어 보인다. 스마트폰과 SNS에는 불과 몇 년 전 사진과 음악, 유행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알고리즘은 이를 끊임없이 다시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과거를 찾아갈 필요 없이 과거가 먼저 현재로 찾아오는 시대다.
효율에 익숙해진 시대에게 비효율은 낭만이다. 요즘은 무엇이든 가장 짧고 빠른 길을 찾는다. 소개팅조차 한 사람과 긴 시간을 보내기보다 한 번에 여러 명을 10~20분씩 만나보는 ‘로테이션 소개팅’이 인기다. 취향에 맞는 콘텐츠는 알고리즘이 골라주고, AI는 몇 초 만에 답을 내놓는다.
과거에는 지금 생각하면 ‘쓸데없는 일’이 많았다. 불편한 2G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수련회 장기자랑 하나를 위해 친구들과 며칠씩 모여 밤늦게 춤을 맞췄다. 그저 재미있어서 시간과 마음을 썼다.
요즘 세대가 그리워하는 것은 폴더폰이나 카프리 팬츠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효율을 따지지 않고 무언가에 시간을 쏟을 수 있었던 태도, 조금 촌스럽고 서툴러도 개성이 있었던 시절의 감각이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그의 장미가 소중한 까닭을 알려준다. 장미를 위해 들인 시간이 그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들었다고. 가장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가장 많은 것을 얻으려는 시대, 역설적으로 우리는 다시 쓸데없이 그저 좋아서 시간을 들이던 때에 끌리고 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