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홍명보 출입금지
2026 북중미 월드컵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번 대회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4위 국가들이 우승을 두고 다투게 됐다.
우승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나라들을 보며 대한민국은 언제쯤 우승 향한 가슴 벅참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연신 고개를 가로젓게 만든다. 한국 축구의 암울한 현실이 뼈저리게 느껴져서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32강 진출 좌절로 대한민국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 홍명보 전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일부 식당과 카페 등에서는 홍 전 감독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고, 온라인에서는 살해 협박성 글까지 올라왔다. 홍 전 감독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떠났다는 소식에 LA 일부 한인 식당에서도 ‘홍명보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었다고 한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축구 선수에 대한 살해 협박도 발생했다. 콜롬비아 축구대표인 하민톤 캄파스는 물론 그의 가족들도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
콜롬비아는 지난 8일 열린 북중미 월드컵 16강전에서 스위스와 연장전까지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4로 져 8강행이 좌절됐다. 2000년생 미드필더 캄파스는 이날 후반 21분 교체 투입된 뒤 연장 후반 5분 상대의 치명적인 패스 실수를 틈타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서는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왼발 슈팅이 골문을 크게 벗어나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경기는 승부차기로 이어졌고, 캄파스는 세 번째 키커로 나서 골을 성공시켰으나, 콜롬비아는 패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경기가 끝난 뒤 캄파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는 그와 그의 가족을 향한 도를 넘은 비난이 쏟아졌고, 심지어 살해 협박 글까지 올라왔다. 캄파스는 신변 안전을 우려해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귀국하는 항공편에도 탑승하지 않았다.
콜롬비아는 축구 역사에서 엄청난 비극을 겪는 나라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개최국 미국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자책골을 넣었고, 콜롬비아는 1-2로 패하며 조기 귀국했다. 이후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팬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고, 귀국 후 고향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좌절과 슬픔을 느끼고, 분노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열정도 증오를 정당화하거나, 누군가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할 수는 없다. 스포츠의 핵심 가치는 존중이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