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언제부터 유아교사는 ‘보고하는 사람’이 되었나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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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진 동명대 유아교육과 교수·미래교육 창의연구소 소장

윤정진, 동명대 유아교육과 교수 / 창의인성연구소 소장. 부산일보DB 윤정진, 동명대 유아교육과 교수 / 창의인성연구소 소장. 부산일보DB

“아침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때 아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유치원에 갔다. 아침밥을 먹고, 이를 닦고, 작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아이의 하루는 단순한 등원이 아니라 세상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었다. 유치원은 친구를 만나고, 함께 웃고, 기다리고, 다투고, 화해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었다. 부모의 품을 잠시 떠난 아이가 처음으로 또 다른 사회를 경험하는 공간, 그곳에는 늘 아이들을 기다리는 교사가 있었다.

교사는 아이가 울면 등을 토닥여 주고, 혼자 남은 아이의 손을 먼저 잡아 주며, 서툰 말 한마디에도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교사를 통해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웠고, 교사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웃고 놀며 하루를 보냈다. 적어도 우리의 기억 속 유치원은 그런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묻게 된다. 언제부터 유아교사는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보다, 학부모에게 끊임없이 설명하고 보고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얼마 전 희극배우 이수지의 유튜브 영상이 큰 화제를 모았다. 영상 속 ‘이민지 선생님’은 아이의 식사량과 낮잠 시간, 친구와의 다툼, 작은 얼룩 하나까지 세심하게 설명하며 연신 “죄송합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를 반복한다. 과장된 코미디였지만 많은 유아교사들은 “웃다가 울었다”, “현실이라 더 불편했다”고 말했다.

특히 영상 속 교사는 아이보다 보호자의 감정을 먼저 살핀다. 교육보다 민원에 긴장하고, 하루 종일 휴대전화 알림과 부모의 요구에 반응한다. 웃음을 위한 풍자였지만 많은 교사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현실을 보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그 영상에 웃으면서도 씁쓸함을 느낀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몇몇 예민한 학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느 순간부터 유치원을 교육의 공간보다 ‘실시간 돌봄 서비스’처럼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 기사와 댓글에는 “트라우마처럼 심장이 뛴다”, “교사도 보호받고 싶다”는 현직·전직 교사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현장에서 예비유아교사를 길러내는 교수로서, 나는 그 반응들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아이의 발달을 이해하고, 놀이를 통해 관계를 만들어가며, 아이의 마음을 기다려주는 교사의 역할을 가르쳐 왔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현장은 교사에게 또 다른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교육적 전문성보다 설명과 기록, 민원 대응과 감정 관리 능력이 더 중요한 역량처럼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의 불안에도 이유는 있다. 맞벌이와 돌봄 공백 속에서 부모는 아이의 하루를 더 세밀하게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과정에서 유치원이 아이의 성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 공간이 아니라, 부모 만족을 실시간으로 관리해야 하는 서비스 공간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변화 속에서 가장 조용히 무너지는 것은 유아교사의 전문성이다. 교사는 아이를 관찰하고 기다리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학부모의 불안을 먼저 관리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교육은 관계의 과정이어야 하는데, 점점 설명과 증명의 노동으로 바뀌고 있다.

교권의 흔들림은 더 이상 일부 학교의 문제가 아니다. 유아교사에서 초중등 교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교사들이 교육보다 설명과 방어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런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선생은 많은데 스승은 없고, 학생은 많은데 제자는 없다.”

웃으며 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피로와 자괴감이 스며 있다. 교권의 추락은 단지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자체의 흔들림이다. 교권은 권위가 아니다. 아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도록 교사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사회의 최소한의 약속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촘촘한 확인 시스템이 아니다. 교사를 끊임없이 증명하게 만드는 문화가 아니라, 교육의 전문성을 신뢰하려는 사회적 회복이다. 유아교사를 ‘부모 만족 서비스 제공자’로 바라보는 순간, 교육은 돌봄의 이름을 한 감정노동으로 변질된다.

아이는 교사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교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아이들에게도 신뢰를 가르칠 수 없다.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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