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해양수도 부산' 완성을 위한 금융의 두 날개
이명호 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
기술·일감 있어도 돈줄 막히면 안 돼
해양산업 키우려면 장기 자금력 필수
금융중심지 걸맞은 공급 기능 가져야
정책 금융과 민간 자본 각자 역할해야
동남권투자공사, 산업은행 축소판 곤란
위험 낮추고 투자자 넓히는 구조 필수
부산은 다시 해양수도를 말하고 있다. 전재수 시장 당선인이 강조해 온 해양수도 부산 구상은 단순한 도시 슬로건이 아니다. 조선·해운·항만·수산업·조선기자재·해양물류·북극항로 전략까지 포괄하는 부산의 미래 산업 전략이다. 그러나 해양수도는 배와 항만, 기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들을 실제 산업으로 키우고 미래 투자로 연결하는 힘, 그 마지막 연결고리는 결국 금융이다.
부산이 해양수도가 되려면 조선소의 기술력, 해운사의 선대 확충, 항만의 자동화, 수산업의 고도화, 조선기자재 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북극항로의 기점을 선점하기 위한 외교적·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내빙선, 친환경선박, 항만물류 인프라, 저온물류 체계, 해상보험, 선박관리, 해양데이터 산업은 모두 막대한 장기 자금을 요구한다. 정책의 방향이 옳아도 자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산업은 움직이지 않는다.
특히 해운·조선 분야의 탄소중립 전환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국제해사기구의 해운 탄소규제 일정은 잠시 늦춰졌지만, 방향 자체가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속도는 조정될 수 있어도 친환경 선박, 대체 연료, 에너지 효율 개선, 항만의 저탄소화라는 흐름은 되돌리기 어렵다. 해상 풍력과 블루카본, 해양 탄소 금융, 해운기업의 부산 집적, 나아가 북극항로 기점 선점 역시 금융의 뒷받침 없이는 구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현재의 자금 공급 체계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중견 조선사들이 선수금 환급 보증, 이른바 RG 발급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주를 하고도 보증이 막히면 계약은 현실화하기 어렵다. 기술력과 일감이 있어도 금융이 병목이 되면 산업은 성장하지 못한다. 해양수도 부산의 가장 약한 고리는 바로 이 금융의 병목이다.
부산은 2009년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이후 국제금융도시를 향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부산이 금융중심지라는 이름에 걸맞은 실질 기능을 갖추려면, 해양산업에 특화된 자금 공급 기능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서울에 있는 기존 금융기관의 일부 기능을 옮기거나 이름만 바꾸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동네에 중국집 하나가 있는데 간판만 바꾼다고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중국집이 생겨야 소비자는 선택할 수 있고, 공급자는 경쟁하며, 서비스의 질도 올라간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부산에는 새로운 금융 공급자가 필요하다.
그 첫 번째 날개가 정책 금융의 확충이다. 전재수 시장 당선인이 강조해 온 동남권투자공사의 조속한 설립은 그래서 중요하다. 다만 이름만 투자공사여서는 안 된다. 실질적으로 산업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기관이어야 한다. 충분한 자본금이 필요하고, 그 자본의 질도 중요하다. 유동성이 낮은 현물 출자 중심으로는 실질적 금융 공급 능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채권 발행 등 안정적 자금 조달 수단도 필요하다. 자금 운용 역시 단순 대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여신, 투자, 인수, 외환, 보증 기능을 함께 갖추어야 조선·해운·항만·물류 기업의 다양한 금융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정부 보증도 사실상 필수다. 정부 신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낮은 조달 금리를 확보하기 어렵고, 시장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어렵다.
또한 산업은행과의 관계도 신중히 설계해야 한다. 동남권투자공사가 산업은행의 동남권 조직과 기능을 그대로 흡수하는 방식이라면, 결국 간판만 바꾼 중국집이 될 우려가 있다. 초기 안착을 위해 산업은행의 경험과 지원을 일부 활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더라도, 목표는 기능 이전이 아니라 기능 추가여야 한다. 산업은행은 기존 역할을 계속 수행하고, 그 위에 동남권투자공사라는 새로운 금융공급 축을 더해야 한다. 동남권투자공사는 산업은행의 축소판이 아니라, 동남권 산업과 해양 경제에 특화된 제2의 정책금융기관이어야 한다.
두 번째 날개는 민간 해양금융 플랫폼이다. 정책 금융만으로 해양수도 부산을 완성할 수 없다. 조선·해운·항만·수산·조선기자재 산업은 모두 장기 자본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시중은행은 과거 조선·해운 불황기에 큰 손실을 경험했고, 여신 담당자들이 사후 책임까지 부담한 기억이 있다. 은행이 다시 같은 위험을 단독으로 떠안으려 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은행을 억지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나누고 민간 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민간 해양금융 플랫폼은 부산이 반드시 새로 만들어야 할 두 번째 금융 날개다. 싱가포르가 변동 자본 회사 제도를 통해 펀드가 머무를 수 있는 그릇을 만들고, 외화 금융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국제금융중심지로 성장했듯이, 부산도 이를 해양산업에 맞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해양금융 투자회사 아래 친환경 선박, 조선기자재, 항만 인프라, 북극항로 물류 같은 구분 계정을 두고, 각 계정의 자산과 부채를 분리하면 위험은 낮추고 투자자는 넓힐 수 있다. 여기에 선박 가격, 용선료, 보험료, 기자재 수출입, 해외 투자자 배당처럼 달러로 움직이는 해양산업의 특성을 반영해 외화 자금 조달과 외화 투자를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장치를 결합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 금융의 부담을 줄이고, 시중 은행의 위험을 분산하며, 조선기자재와 중견조선사에도 새로운 자금통로를 열 수 있다. 무엇보다 부산에 펀드 설정, 투자심사, 회계·법률·평가·수탁·외환·리스크관리 기능이 실제로 쌓이게 된다. 금융중심지는 이름이 아니라 기능으로 증명된다.
물론 민간금융 플랫폼이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투자자 보호, 통 상규범, 외환 건전성, 자금 세탁 방지, 이해 상충 방지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정 조선소나 특정 선사에 사실상 보조금을 주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투자 대상은 공개된 기준에 따라 선정되어야 하고, 수익과 손실은 시장 원리에 따라 배분되어야 한다. 그래야 금융 당국과 투자자 모두가 신뢰할 수 있다.
해양수도 부산은 두 개의 금융 날개를 필요로 한다. 하나는 동남권투자공사를 중심으로 한 정책 금융의 확충이다. 다른 하나는 해양산업에 특화된 민간 금융 플랫폼의 구축이다. 정책 금융이 방향을 잡고 초기 위험을 나누어 준다면, 민간 금융 플랫폼은 더 넓은 자본을 해양산업으로 끌어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부산의 미래는 바다에 있다. 그러나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배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배를 만들 돈, 항만을 바꿀 돈, 기자재 기업을 키울 돈, 친환경 전환을 가능하게 할 돈, 북극항로를 준비할 돈이 필요하다. 이제 부산은 해양산업의 도시를 넘어 해양금융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 금융의 두 날개를 달 때, 해양수도 부산은 비로소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