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양수도 부산, '노인과 바다'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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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배 국립한국해양대학 국제관계학과 교수

올해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왔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이제 부산이 진짜 해양수도가 되는 것”처럼 말한다. 항만 물동량은 세계 상위권이고, 조선과 수산 산업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숫자로만 보면 부산은 이미 해양 강국의 전초기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런 말도 들린다. “부산은 노인만 남고, 젊은 층은 떠나고, 바다만 있는 도시 아니냐.” 누군가는 이를 빗대어 ‘노인과 바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조 섞인 농담이지만, 그 안에는 씁쓸한 현실 인식이 담겨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우리는 과연 바다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부산 사람들은 바다를 매일 본다. 광안대교를 건너고, 영도를 지나고, 북항의 불빛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바다가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해 보라 하면 쉽게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배가 많이 다닌다”, “수출입이 활발하다”는 정도의 상식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바다는 자원이고, 관할권이며, 안보이고, 생존의 통로다. 동해와 남해의 질서가 흔들리면 물류가 흔들리고, 물류가 흔들리면 일자리가 흔들린다. 우리가 먹는 수산물,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우리가 일하는 산업의 상당 부분이 바다와 직결되어 있다. 부산이 동북아 관문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누가 바꿀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일본과의 해상 경계, 북항을 통과하는 국제 항로, 대륙과 해양을 잇는 지정학적 조건은 부산이 떠나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해양 전략을 논하는 목소리는 종종 수도권에서 먼저 나온다. 서울의 전문가가 해운대 바닷가에 발을 한 번 담그면 해양법 전문가가 되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부산은 현장이면서도 주변부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바다는 책상 위 지도로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항로의 흐름, 파도의 방향, 물류의 시간표는 현장의 감각과 결합될 때 비로소 전략이 된다.

“그건 정부가 알아서 할 문제 아닌가요?”, “우리는 먹고 살기도 바쁜데요”. 이 말은 틀리지 않다. 당장의 삶이 급한 시민에게 해양 관할권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거리감이 도시의 약점이 된다. 바다를 산업의 통계로만 이해하면, 시민의 미래와 연결되지 못한다.

해양수도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바다를 자신의 삶의 언어로 이해할 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 부산이 ‘노인과 바다’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미래와 바다’로 나아갈 것인지는 시민의 인식에 달려 있다. 젊은 세대가 떠나는 이유가 단지 일자리 부족만은 아니다. 도시가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그 안에서 자신의 미래가 보이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바다를 전략과 산업의 문제로만 둘 것이 아니라, 청년의 기회와 연결된 공간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거창한 정책보다 작은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다. “왜 부산은 바다와 함께 살아야 할까?”, “동북아 항로의 중심이라는 말이 우리 삶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설명하려는 순간, 우리는 다시 공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바다는 추상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정책은 선거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조직도 바뀌고, 구호도 바뀐다. 그러나 시민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 번 이해하면 오래 남는다. 부산이 가진 지정학적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바다는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바다를 남의 전략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드는 일이다.

해양수도 부산은 행정적 지위가 아니라 생활의 감각에서 시작된다. 광안의 저녁 바람 속에서, 북항의 컨테이너 불빛 속에서, 우리는 이미 바다 한가운데 서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질문은 하나다. “이 바다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려는 시민이 늘어날 때, 부산은 더 이상 ‘노인과 바다’가 아니라 미래와 함께 서 있는 도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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