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삼절사와 기억해야 할 역사
임진왜란 순절 양지·양조한·양통한
남원 양 씨 3인 위패 모신 ‘삼절사’
정책이주지 반송 이면의 잊힌 역사
‘의병의 날’ 지나며 되새겨 볼 필요
5월 가정의 달이 가고 맞이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엔 의병의 날(6월 1일)과 현충일(6월 6일), 한국전쟁(6월 25일) 등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을 기리는 날이 이어진다.
그중 6월 1일 의병의 날은 국난의 위기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 나라를 지킨 의병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의병의 날이 6월 1일로 지정된 건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가 경남 의령에서 처음 거병한 날이기 때문이다.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가 6월 1일이다.
곽재우는 임진왜란 초기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했다. 붉은 갑옷을 입고 전장을 누벼 ‘홍의장군’이라 불렸고, 왜군들은 그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했을 정도였다. 그는 정암진 전투 등에서 왜군의 북상을 막아내며 조선군이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 곽재우 부대와 함께 싸운 의병 가운데 양통한이란 인물이 있다. 부산 출신의 양통한은 왜군의 침략에 동래성이 무너지자 의병으로 나서 경주, 대구 등지에서 활약했고, 정유재란 때 곽재우와 함께 화왕산성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순절했다. 이때 그의 두 아들 양의와 양숙 또한 아버지와 함께 싸우다 전사하는 비운을 당했다.
앞서 양통한의 형 양조한은 동래성 전투에서 순절했다. 동래향교 유생이었던 양조한은 왜군이 동래성을 공격하자 향교의 성현 위패를 정원루로 옮겨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그의 아들 양홍 역시 아버지와 마지막을 함께했다. 한집안의 두 부자(父子)가 모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양조한과 양통한 형제는 남원 양 씨 가문이다. 이 가문의 일가인 양지는 임진왜란 당시 경기도 삭녕(현 연천)군수로 재직 중이었다. 그 또한 북상하는 왜군에 맞서 성을 사수하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양지는 후일 이조판서에 증직되며 충민공이란 시호를 받았고, 양조한은 호조정랑, 양통한은 호조좌랑에 봉해졌다.
남원 양 씨 가문 3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해운대구 반송동에 자리한 삼절사(三節祠)다. 삼절사는 1839년 동래부사 이명적이 세 충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반송동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삼절사는 약 400평(1320㎡) 규모의 대지 위에 세워져 다. 제향을 지내는 세한당과 모현관, 반송재 3개 동으로 구성돼 있으며 1986년엔 부산시 문화재자료 1호로 지정된 바 있다. 세한당의 세한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같은 논어 구절에서 따왔다. ‘날이 추워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不彫)’란 뜻이다.
일본에 맞선 충신을 모신 사당인지라 삼절사는 일제강점기에 큰 수난을 겪는다. 당시 일제는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사우와 향사를 경계하며 탄압했다. 이에 후손들은 삼절사 위패의 훼손을 피하기 위해 몰래 민가에 옮겨 봉안했고, 제향도 한밤중에 조용히 치렀다. 일제가 사당을 철거하려 하자 창고라고 둘러대며 가까스로 건물을 지켜냈다고도 한다. 현판과 문서 상당수가 사라졌지만, 후손들은 끝까지 삼절사를 지켜냈다.
남원 양 씨 가문과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양조한의 손자이자 양홍의 아들인 양부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순국한 동래성 전투 현장에 함께 있었다. 당시 열두 살이던 그는 포로가 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석 달 만에 일본어를 익힌 양부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이 됐고, 명나라 사신으로 일본에 온 심유경과 공모해 독이 든 환약을 도요토미가 먹도록 해 그의 죽음에 관여했다고 한다. 이 얘기는 조선 후기 문헌 〈연려실기술〉과 〈성호사설〉에 기록돼 있다.
‘병역 명문가’란 말이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국가에 헌신한 가문을 일컫는다. 그런 의미에서 임진왜란의 국난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가가 목숨을 바친 남원 양 씨 가문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호국 명문가’라 할 만하다.
반송동은 집단이주촌으로 알려져 있다. 1960~1970년대 부산 도심의 불량주택 철거에 따라 반송동에 대규모 정책이주가 이뤄진 탓이다. 하지만 정책이주 이전에 반송동엔 남원 양 씨 가문이 400여 년간 대대로 터를 잡고 있다. 후손들은 여전히 삼절사를 지키며 세 선조의 제향을 모시고 있다.
집단이주란 이미지를 한꺼풀 벗겨내면 반송은 달리 보인다. 숨은 역사가 숨쉬는 곳.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재조명된 엄흥도처럼 늦었지만 삼절사와 세 위인의 이름도 기억해야 할 역사다. 우리 주변엔 여전히 알려지지 않거나 잊힌 역사가 적지 않다.
정광용 독자여론팀장 kyjeong@busan.com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