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다시 보자, 제조업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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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규 경제부 부장

공급망 위기에서 다시 드러난 제조업 취약성
현지 생산 능력과 국가적 제조 역량도 재평가
부산 제조업 기반 토대로 도시 경쟁력 키워야

‘공급망 위기’라는 말이 뉴스에 연일 등장한다. 석유부터 주사기까지, 알루미늄부터 종량제 봉투까지 엮여 나오는 품목들도 다종다양하다. 위기의 원인은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다. 앞서 코로나19 사태에서 사람들은 물류나 통상 정책에서나 등장하던 ‘공급망’을 피부로 체감했다. 이 풍요와 번영의 시대에 마스크 한 장 구하지 못해 패닉에 빠졌던 사람들은 정부가 아무리 재고량이 충분하다고 해도 쓰레기봉투를 일단 사고 본다. 소셜미디어에는 나이든 고양이에게 하루 세 번 경구 투여 주사기로 약을 줘야 하는데, 전쟁으로 자재 공급이 달려 주사기 주문이 취소됐다는 호소가 올라왔다.

공급망 위기는 기업과 산업뿐 아니라 소비자 모두의 문제다. 원재료 조달부터 제조, 물류와 최종 배송에 이르는 공급망 중 어느 한 단계라도 구멍이 생기면 제품은 생산과 운송에 차질을 빚고, 사람들은 매일같이 쓰는 물건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국가와 세계 경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미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를 경고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야 우리는 클릭 한 번이면 문 앞에 도착하던 물건의 생애를 새삼 들여다보게 된다. 제조업의 발견이다.

“제조업은 하수처리 시스템처럼 변질되어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하지만 일이 잘못되기 전에는 인식되지 않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제조업연구소 소장이자 제조공학자 팀 민셜은 〈우리의 삶은 제조된다〉에서 이렇게 쓴다. 일이 잘못됐을 때 먼저 드러나는 것은 제조업의 취약성이다. 평균 폭 55km 규모 호르무즈해협을 닫았을 뿐인데 전 세계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20%가 막혔다. 중동에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는 타격이 더 크다.

문제는 이번 위기가 봉합된다고 해도 취약성은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가 물러나고 미국과 이란이 전쟁을 끝내도 자원과 기술을 둘러싼 각국의 패권 경쟁과 보호주의 확대 기조는 계속된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또 다른 팬데믹이 언제 다시 인류를 덮칠지도 알 수 없다. 기후 변화도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폭염이나 가뭄은 원자재 수급부터 생산성 저하, 물류 경로 변동까지 글로벌 공급망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제조업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과거에는 저비용 고품질 제품을 빠르게 제공하려면 재고와 여분의 공급업체 같은 모든 ‘낭비’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러다 보니 공급망 차질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졌다. 위 책에서는 이를 “저비용과 즉시성만 쫓다가 플랜 B가 없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요약한다. 실제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적시생산(JIT, 저스트인타임)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대비생산(JIC, 저스트인케이스)으로 전환했거나 두 방식을 병행하는 추세다.

가까운 곳에서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 ‘현지 생산 능력’과 국가적인 ‘제조 역량’도 재평가를 받고 있다. 책에 소개된 ‘인공호흡기 챌린지’는 단적인 사례다. 코로나19 당시 영국 정부는 하루 생산량 5대에 불과하던 인공호흡기의 수요가 폭증하자 여러 분야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인공호흡기 설계안을 공모했는데, 그 결과 불과 3개월 만에 영국에서 인공호흡기 1만 4000대가 더 제조됐다. 같은 맥락에서 제3세계로 이전한 공장을 다시 자국이나 인근 지역으로 옮겨오는 ‘리쇼어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부산 제조업을 다시 볼 차례다. 부산은 산업화 시대 대표 제조업 도시였지만, 전국 매출 100대 기업에서 부산 기업은 실종된 지 오래다. 한때 지역내총생산(GRDP)의 30% 이상을 차지하던 제조업 비중은 2023년 17.4%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해 부산의 제조업 성장률은 17대 시도 중 꼴찌였다. 자동차와 철강 등 주력 산업은 미국 관세 압박에 중동 사태가 겹쳐 신음한다. 2024년 부산상공회의소가 낸 보고서를 보면 부산 제조업은 기술수준으로 볼 때도 고위기술군 비중(6.1%)이 전국 평균(24.0%)보다 한참 낮다.

그럼에도 제조업은 부산의 경쟁력이다. 하버드대 교수인 게리 피사노와 윌리 시가 미국 경제를 두고 지적한 “현재의 저부가가치 제조업은 미래의 혁신적 신제품을 위한 씨앗을 품고 있다”는 말은 부산에도 적용된다. 기계·부품 중심의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인공지능(AI), 로봇 기술과 결합해 디지털로 전환하고, 항만과 해양이라는 자산과 연계한다면 부산은 제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연관된 서비스업의 고용 창출까지 이끌 수 있다.

부산이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을 통해 도약하려는 모델인 싱가포르도 금융 중심지의 저변에는 첨단 산업 중심의 제조업 육성 정책이 있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도 돔 구장이나 테마파크 유치 공약만큼이나 부산 제조업 육성 방안을 약속하는 후보가 필요하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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