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촉법소년'에 던지는 질문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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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 편집부 차장

남자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멈칫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당혹 그 자체였다. 나이 지긋한 여성들이 화장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자 화장실 줄이 길다는 이유로 ‘금지된 선(?)’을 넘은 것이다. 그런데 날 본 여성들은 왁자지껄한 웃음부터 터뜨렸다. “우리 나이 돼봐, 다 괜찮아.”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남자인 내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면 분명 성 범죄 용의자로 경찰 신고를 당했을 것이다. 또 그들이 조금이라도 젊었다면 날 보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난리도 아니었을 게 분명하다.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유별해야 한다’ 즉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는 기준이 무너진 경우 누군가에는 범죄 행위로, 또 다른 누군가에는 유쾌한 일로 소비될 수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이 해프닝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믿어왔던 ‘당연함’은 여러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다시 말해, 상대적이며 허술하다. 문제는 이 같은 당연함이 규칙, 관행, 고정관념 등으로 고착화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이 나이쯤 되면 이래야 해”, “서울 강남에 살면 다를 거야”, “여성은 당연히 약할 거야” “어리니까 아는 게 별로 없어”. 이 같은 기준이 때로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한편으론 고정관념과 편견을 낳고 사람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기도 한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을 만들고 사회적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주는 부작용도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이를 ‘해체’의 개념으로 짚어낸 바 있다. 그는 수많은 경계선(남/여, 중심/주변, 성인/아이)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허술한지를 경고했다. 데리다에 따르면, 이러한 경계선이나 규칙은 타인을 배제하고 규정하는 ‘권력의 장치’의 일환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셸 푸코는 이러한 선들이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 아니라, 대중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기득권이 설계한 ‘통치 기술’이자 ‘규율의 장치’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선이 그어진 배경은 생략한 채, 오직 그 선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타인을 재단하며 살고 있다.

이 모순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지점이 바로 ‘촉법소년’ 논란이다. 현행법은 만 14세 미만을 ‘아이’로 규정하고 형사 처벌에서 제외한다. 촉법소년의 기준은 나이라는 잣대인데, 이 ‘14세 미만’이라는 기준은 어디서 나왔는지 무척 궁금하다. 대략적으로 이 나이 정도면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고 사리 분별을 제대로 못 한다는 우리 사회의 ‘당연함’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최근 촉법소년의 범죄를 보면 나이라는 선에 기대 발행하는 면죄부가 현실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 여실히 드러난다. 실제로 촉법소년 범죄는 성인 범죄 못지않게 잔인하고 치밀하다. 해당 사건은 2022년 1만 6435건에서 2024년 2만 814건, 2025년 2만 2598건으로 해마다 증가한다. 특히 성폭행, 강도, 살인 등 범죄 수위도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다.

촉법소년 제도의 한계로 인해 73년 만에 연령 하향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나이’라는 단 하나의 선을 적용할 경우 또 ‘하나마나한’ 법 개정이 될 게 확실하다. 나이라는 잣대가 인격이나 법치 의식의 척도가 되기엔 너무나 상대적이고 허술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상황과 피해자의 고통, 그리고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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