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에 거북선 간다면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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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 여파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면서 군사적 긴장과 함께 국제 해상 물류의 취약성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5분의 1가량이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데다 한국이 들여오는 중동산 원유의 90% 이상이 이 해협을 지난다. 이곳이 막히자 국제 에너지 시장은 즉각 요동쳤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더 한층 관심이 높아진 게 바로 북극항로다.


지역의 한 건축가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거북쇄빙선’. 이 거북 모양의 쇄빙선은 창의적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얼음 위로 올라타기 쉽도록 선체 바닥을 둥글게 만들고, 거북 모양 등판은 열리는 구조로 설계됐다. 양덕복 건축가 제공 지역의 한 건축가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거북쇄빙선’. 이 거북 모양의 쇄빙선은 창의적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얼음 위로 올라타기 쉽도록 선체 바닥을 둥글게 만들고, 거북 모양 등판은 열리는 구조로 설계됐다. 양덕복 건축가 제공

북극항로는 북동항로와 북서항로 등으로 나뉜다. 부산일보DB 북극항로는 북동항로와 북서항로 등으로 나뉜다. 부산일보DB

■관심 더 높아진 북극항로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와 가스를 아시아와 유럽으로 실어 나르는 핵심 통로다. 이곳의 불안은 곧 에너지 가격의 불안으로 직결된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동아시아 국가들에는 치명적이다. 한국, 일본, 중국은 중동산 원유 비중이 높다. 단기간 봉쇄나 군사적 긴장만으로도 보험료 상승, 선박 우회, 운임 인상 등 비용 증가가 발생한다. 이 지점에서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진다. 에너지 수급과 안보, 물류와 조선업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과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부산에서 유럽까지 수에즈운하를 거치면 약 2만 km 이상이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1만 3000km 안팎으로 줄어든다. 항해 기간도 30일 이상에서 20일 내외로 단축된다. 운임, 연료비, 탄소배출이 동시에 줄어드는 구조다. 무엇보다 물류 경쟁력과 환경 규제가 함께 강화되는 시대에 전략적 가치가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 중동 정세가 격화되면서 북극항로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구상이 아니라 유사시를 대비한 현실적 선택지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북극해를 항해 중인 한국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모습. 부산일보DB 북극해를 항해 중인 한국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모습. 부산일보DB

북극항로 대체항로 맞나

그렇다면 북극항로가 당장 에너지와 물류 수급의 대체항로가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략적 의미는 분명히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대체항로의 부상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호르무즈 해협과 북극항로 사이에는 기능적 차이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원유와 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핵심 수송로라면, 북극항로는 아직 컨테이너 화물과 러시아산 자원 운송 비중이 더 크다. 북극해에 전 세계 미발견 원유의 약 13%, 천연가스의 30%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를 곧바로 북극을 통해 대체 수급할 수 있다는 발상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북극항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에너지의 ‘대체’가 아니라 ‘다변화’의 관점 때문이다. 세계 경제는 이제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경로를 선택하지 않는다. 안정성과 복원력, 정치적 리스크 등이 판단 기준이 됐다. 물론 북극항로 역시 환경적·정치적 위험을 안고 있다. 항로 상당 구간이 러시아 영향권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가와 기업은 안정적 수급을 위해 복수의 선택지를 확보해야 한다. 북극항로의 전략적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얼음… 쇄빙 역량이 핵심

북극항로는 북극해를 지나는 모든 항로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러시아 연안을 따라가는 북동항로(NSR), 캐나다 북쪽을 지나는 북서항로, 북극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중앙항로다. 이 가운데 현재 상업적으로 가장 현실화한 노선은 북동항로다. 러시아가 항로 관리권을 행사하며 쇄빙선 지원과 통항 허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다만 운항 가능 기간은 통상 7월에서 10월까지 약 4개월에 불과하다. 기후 온난화로 해빙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계절 항로에 가깝다. 관련 연구기관들은 2060년쯤이 돼야 일반 상선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북극항로가 상시적인 대안 항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조건이 분명하다. 바로 쇄빙 역량이다. 두꺼운 얼음층을 깨며 항해해야 하는 만큼 쇄빙선이 핵심 인프라다. 지난해 10월 열린 세계해양포럼에서는 북극항로 산업 선점을 위한 쇄빙선 기술과 친환경 연료 시스템 구축이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이에 앞서 같은 해 9월 부산항만공사가 주최한 북극항로 전문가 정책 간담회에서도 친환경 쇄빙선 건조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쇄빙선은 단순한 선박이 아니다. 새로운 패권지역으로 부상하는 북극항로에서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기술이다. 결국 쇄빙선 건조 능력 및 운용은 븍극항로의 주도권을 가를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

러시아의 핵추진 쇄빙선 야말호가 북극항로를 지나고 있다. 부산일보DB 러시아의 핵추진 쇄빙선 야말호가 북극항로를 지나고 있다. 부산일보DB

상상력 더한 ‘거북쇄빙선’

쇄빙선은 말 그대로 얼음을 깨며 항로를 여는 배다. 일반 선박보다 훨씬 두꺼운 강재를 사용하고, 얼음 위로 선수(船首)를 밀어 올린 뒤 선체의 무게로 얼음을 눌러 깨뜨리는 방식으로 전진한다. 보통 선박보다 1.5~2배 두꺼운 고강도 강철과 이중 선체를 갖추고 얼음에 갇히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360도 회전이 가능한 추진기와 혹한에서도 작동하는 난방·배관 보호 시스템을 장착한다. 얼음에 고립될 경우에는 밸러스트 탱크의 물을 좌우로 이동시켜 선체를 흔들며 빠져나온다. 그러나 쇄빙선의 본질은 따로 있다. 뒤따르는 상선과 에너지 운반선을 위해 항로를 개척하는 선도선이라는 점이다. 북극항로의 실질적 개방 여부 역시 결국 이러한 선박 체계의 구축에 달려 있다.

최근에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제안도 나왔다. 부산 울산 경남을 무대로 활동하는 양덕복 건축가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모티브로 한 ‘거북쇄빙선’을 구상해 설계한 것이다. 그는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쇄빙선이자 관광·테러 대응 기능을 겸한 거북쇄빙선을 상상하게 됐다”며 “특히 고출력 엔진 장착 등과 관련해 카이스트 측에서도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거북쇄빙선은 얼음 위로 올라타기 쉽도록 선체 바닥을 둥글게 만들고, 등판은 열리는 구조로 설계됐다. 상징적 제안이지만 의미는 분명하다. 과거 바다의 판도를 바꾼 배가 기술과 창조성, 전략의 결합이었다면, 오늘의 쇄빙선 역시 그러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우리는 준비돼 있는가.

현재 우리나라에는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가 있다. 극지연구소가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쇄빙연구선으로 부산의 한진중공업이 설계해 2009년 11월 인도됐다. 두께 1m의 얼음을 깨며 3노트(시속 5.5km)로 운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아라온호는 극지 탐사와 연구, 해상 구조 지원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내 조선업계는 러시아 야말 LNG 프로젝트에 투입된 쇄빙 LNG 운반선을 다수 건조했다. 한화오션은 20척이 넘는 쇄빙 LNG선을 인도했고, 삼성중공업도 양방향 쇄빙선, 쇄빙 LNG 운반선 건조 경험이 있다. 나아가 대전에 있는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는 국내 유일의 ‘빙해 수조’를 운영하며 쇄빙 성능을 시험한다. 국내 기업이나 연구소의 기술적 기반은 이미 축적돼 있단 얘기다.

문제는 국가 전략 차원의 전용 쇄빙선 체계는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쇄빙선 건조 경험과 별개로 항해 데이터 축적, 정밀 해도 제작, 위성 정보 확보, 구조·구난 체계, 보험 시스템, 전문 인력 양성이 종합적으로 결합해야 비로소 상업 항로가 된다. 한두 차례의 시범 운항으로는 부족하다. 장기 계획과 일관된 투자가 필요하다. 북극항로는 조선 산업의 수주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 물류 주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갖는 의미가 커진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는 점점 더 분절되고 있고, 해상 교통로는 군사,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는 현실이다. 이런 시대에 북극항로는 단순한 해상 통로가 아니다. 지정학적 변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전략 공간이 될 가능성을 지닌다. 다만 북극항로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환경적 제약에 더해 정치·외교적 부담도 적지 않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현실적 제약이 더욱 크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북극항로가 기회의 땅이 될지, 아니면 다른 위험의 바다가 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해수부가 부산에 있으면서도 북극항로 준비가 선언에 그친다면 이전의 의미는 반감될 것이다. 반대로 쇄빙선 건조와 항로 개척이 본격화된다면 부산 이전은 해양국가 전략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은 우리에게 분명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북극의 문이 완전히 열리기 전에 그 문을 두드릴 배를 갖추는 일. 그것이 해양국가를 자임해 온 나라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대비일 것이다.


정달식 부산일보 논설위원. 부산일보DB 정달식 부산일보 논설위원. 부산일보DB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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