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대심도라는 새 길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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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만덕에서 센텀시티를 잇는 지하 40m 이하 대심도 도로가 뚫렸다. 부산에서는 사상~해운대 대심도 지하고속도로도 예정돼 있다. 서울에선 영등포구 양평동 금천구 독산동을 잇는 서부간선 지하도로가 2021년 9월 개통됐고, 경부고속도로 동탄~양재, 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 판교~퇴계원 등의 구간에서 대심도 지하화를 검토하고 있다. 도로뿐 아니라 철도도 지하로 더 깊이 들어간다. 서울과 파주 운정을 잇는 GTX-A 노선도 대심도 철로인데, GTX 서울역사는 지하 60m에 건설됐다. 향후 건설되는 대부분의 GTX 노선이 대심도를 상정하고 있고, 수도권 철도 용량 포화를 해소하는 방법으로도 대심도 철로가 검토되고 있다.

밀집도 높은 대도시는, 지상은 물론 표층부 지하까지 도로, 지하철, 각종 관로 등으로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포화상태에 이른 도심 내부의 새로운 교통망 구상이 수직으로 더 깊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지상 건축물 보상비, 지하 매설물 이설비 등을 줄일 수 있는 이점도 있고, 지상에 전달되는 소음·진동·대기오염을 줄일 수 있다고 사업자 측은 설명한다.

하지만 발파를 비롯한 지반 공사 과정에 주변에선 민원이 잦다. 특히 3년 전 부산 온천동에서 발생한 대심도 공사장 지반 붕괴 사고는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하다. 붕괴 지점에서 불과 32.2m 거리에 도시철도 3호선 선로가 있었다. 지하수 유실로 도심 곳곳에 발생하는 싱크홀이 대심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도로를 더 깊은 곳에 뚫는 만큼 붕괴·화재 등 사고가 났을 때 신속한 탈출·구조 동선 확보, 연기 배출이 가능한 시스템 마련은 더 중요하다.

문제는 대심도 도로와 철로는 계속 뚫리는데 사업자가 지켜야 할 안전 기준은 대심도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지하 안전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준용해 지하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안전영향평가를 할 뿐이다.

지난해 9월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는 “국내 정책이 대심도 지하공간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시설별로 분절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대심도 지하공간 개발을 위한 통합 법률을 제정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심도에 대한 정의, 심도 기준, 안전·환경·재산권 등을 종합적으로 규정하는 법률 제정이 시급하다. 단순히 빠른 길이 아니라, 안전하고 빠른 길이어야 하니까.

이호진 선임기자 jiny@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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