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미술관에서 도시의 시간을 읽다
부산현대미술관 세 전시
허구로 드러나는 문소현의 ‘공원 생활’
영화 매체의 전시 확장 탐색 ‘영화 이후’
전환 가능성을 모색하는 ‘나의 집이 나’
걷기, 영상, 디제잉 등 시민 프로그램도
서울퀴어콜렉티브, '우리는 모두 팔십에 서로의 요양보호사가 되어 있지 않을까?'.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강해성 + 문소정 + 한경태, '이동하는 모듈러 만물상'(Roving Modular Bric-a-brac).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추운 날씨를 피해 긴 시간 머물기 좋은 곳 가운데 미술관이야말로 최적이다. 부산의 공공미술관 두 곳 가운데, 현재 관람객을 맞이하는 곳은 을숙도에 자리한 부산현대미술관뿐이다. 리노베이션으로 휴관 중인 부산시립미술관과 달리, 부산현대미술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전시실을 풀가동하며 세 개의 전시를 동시에 선보이고 있다.
‘2025 부산현대미술관 플랫폼_나의 집이 나’는 인구 감소와 주거 위기, 돌봄의 재편 등 압축된 도시의 현실을 ‘축소 지향적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진단하고, 도시를 다시 짓는 상상력을 시험대에 올린다. 소장품 연작 ‘소장품섬_문소현: 공원 생활’은 평온해 보이는 공원을 배경으로 일상의 허구성과 불안을 드러내며 현실의 ‘정상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시네미디어_영화 이후’는 영화 매체가 디지털 환경과 전시 공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확장·변형되는지 살피며 미술관에서의 새로운 영화 경험을 제안한다.
제1전시실(지하 1층)의 ‘소장품섬_문소현: 공원 생활’과 제2·3전시실(지하 1층)의 ‘시네미디어: 영화 이후’ 전시는 오는 18일까지 열린다. 제4·5전시실(지상 1·2층)과 을숙마당(1층 로비) 등에서 열리는 ‘2025 부산현대미술관 플랫폼_나의 집이 나’는 3월 22일까지 계속된다.
공감각, '변화하는 도시, 다시 쓰이는 삶'(Rewriting Life in a Changing City).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포자몽, '마이코셀 유니버스: 균류와 인간의 공존'(MycoCell Universe).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ADHD(김영은, 김지하), '사이, 너머'(Between, Beyond).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공원 생활’과 ‘영화 이후’
‘소장품섬’에서는 부산현대미술관 소장품인 문소현의 12채널 영상 설치 ‘공원 생활’(2016)을 선보인다. 흑백 영상 위에 숨소리, 먹는 소리, 고기 굽는 소리 같은 반복적 사운드가 깔리고, 무표정한 인형들이 기구 운동, 모래놀이, 반려견 산책 등 목적 없는 일상 행위를 수행하며 어딘지 어둡고 불길한 분위기를 만든다.
박한나 학예연구사는 “겉으로는 평온한 공원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의 메커니즘을 통해 우리가 당연시해 온 일상과 현실의 기반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드러내며, 시간·장소·군중·일상 같은 기본 단위조차 조작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이후 문소현은 ‘불꽃축제’ ‘낙원으로’ ‘홀로쑈’ ‘완성된 몸’ 등으로 작업 세계를 확장해 왔고, 최근에는 ‘자연 친화적’이라는 착각이 빚어낸 미디어적 감각 구조를 탐구하는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격년제로 진행되는 ‘부산현대미술관 시네미디어’ 기획전의 두 번째 회차인 ‘영화 이후’는 영화, 다큐멘터리, 16㎜ 필름 설치, 실험 영화, 디지털 애니메이션 등 국내외 작가 67팀의 작품 111점을 통해 영화 매체의 전시 확장 가능성을 탐구한다.
디지털 혁명 이후 변화한 기술 환경 속에서 영화 예술의 고유한 특성과, 현대미술 안에서 재구성되는 영화적 세계가 어떻게 공존하는지 묻는 전시로, 장-뤼크 고다르의 비디오 작업 ‘영화사(들)’, 마이클 스노우의 ‘씨 유 레이터’, 하룬 파로키의 ‘그리피스 영화의 구조’가 대표작으로 소개된다. 타시타 딘의 ‘바다에서 사라짐’ ‘테인마우스 일렉트론’ ‘파타 모르가나’와 로사 바바의 ‘복사 노출-시간은 빛줄기를 따라 흐른다’는 16㎜ 필름 영사기로 상영되며, 국내외 필진 14명의 글을 묶은 책자 <AFTER CINEMA>도 함께 발간됐다.
랩.WWW, '함께 짓는 도시'(We Build This City).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리슨투더시티, '임장크루-갭투-초품아-마피-강남불패: 지역소멸과 욕망의 도시'.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주현제바우쿤스트, '콘크리트 유토피아'(Concrete Utopia).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플랫폼_나의 집이 나
‘부산현대미술관 플랫폼’은 2023년 ‘자연과 인간’, 2024년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에 이어 세 번째 연례전으로,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주거 위기와 돌봄의 재편 등 한국 도시가 맞닥뜨린 조건 속에서 ‘어떤 속도와 시간으로 도시를 다시 지을 것인가’를 묻는다.
이번 전시는 성장과 팽창 대신 ‘축소 지향적 공간’을 핵심 개념으로 삼아 도시의 기능과 관계망을 선별적으로 재구성하는 전략을 제안하며, 미술관 안팎에 조성된 10개의 파빌리온을 통해 관람자가 걷고, 통과하고, 접고 펼치는 행위로 ‘축소 도시’의 삶을 경험하게 한다.
공모로 선정된 에이디에이치디, 리슨투더시티, 강해성·문소정·한경태, 유림도시건축, 포자몽, 서울퀴어콜렉티브, 주현제바우쿤스트, 랩.WWW, 공감각, 더 파일룸 등 10팀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축소 도시의 조건을 해석하지만, 연구 기반이 단단한 작업과 다소 느슨한 건축적 실험이 공존해 밀도와 완성도의 편차도 드러난다.
김가현 학예연구사는 ‘도시 축소’를 오늘날 한국 도시의 구조적 조건으로 짚으며, 주거를 연대의 최소 단위로, 거리를 돌봄의 범위로, 건축을 감당 가능한 규모와 순환 가능한 자원으로 재구성하는 전략을 제안하는데, 이는 축소를 쇠퇴가 아닌 전환의 계기로 읽어내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 전시가 도시를 구원하지는 못하겠지만, 견고한 논리에 작은 균열을 내고 다른 시간대를 상상하게 만드는 예술의 역할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하나의 도시 비전이라기보다 도시를 읽는 문법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한편, 전시 연계 교육으로 △원도심 일대를 걷는 프로그램(2월 21·22·28일, 회차당 13명) △사이의 도시–비하인드 영상 상영회(3월 7일) △시민들과 교감하는 디제잉 퍼포먼스(3월 7일) △물물교환 퍼포먼스(3월 14일) 등이 운영된다. 프로그램 참여는 부산현대미술관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전화(051-220-7400)로 문의하면 된다. 관람 시간은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오후 5시 30분 입장 마감)이고, 세 전시 모두 무료이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