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요리 살리는 지역 식재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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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말미잘로 만든 대만 전병
곰장어 스프링롤, 성게 그라탱
기장 앞바다 식재료 무한변주
획일적인 먹거리에 문제 의식
지구 해양 생태계도 보호하고
다양성 지킬 수 있는 미식 실험

세상에는 맛있는 게 너무 많다! 지역의 제철 식재료를 즐기면 우리의 삶도 행복해지고 지구도 지속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맛있는 것만 즐기면서 살면 된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래서 지난 29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 에브리싱글 골프앤라이프에서 열린 <로컬 오딧세이:한 끼에 담아낸 지속 가능성의 여정> 북토크를 찾아갔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아워플래닛’ 장민영 대표와 김태윤 셰프가 말하는 맛있는 삶과 하나뿐인 지구를 위한 이야기다.


지난달 29일 ‘아워플래닛’ 장민영 대표와 김태윤 셰프의 북토크가 열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아워플래닛’ 장민영 대표와 김태윤 셰프의 북토크가 열리고 있다.

■세상은 넓고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울릉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재료는 뭘까요?” 장 대표의 질문에 명이나물이라는 정답이 쉽게 나왔다. 명이나물은 고깃집 밑반찬으로 자리 잡으면서 유명해졌다. 울릉도에 가면 쌈, 장아찌, 김치 등 거의 매끼 명이나물이 나온다. 그런데 이제는 고깃집에 빠지면 서운한 명이나물 때문에 우리나라 식재료의 보물섬 울릉도에 문제가 생겼다. 울릉도의 나리분지에는 섬말나리, 눈개중막, 눈개승마, 왕호장, 섬엉겅퀴를 비롯해 종 다양성이 어마어마했었다. 그런데 이걸 싹 다 베고 명이를 심는 바람에 종 다양성이 사람의 손에 의해 뽑혀 버리고 말았다.


풍선말미잘. ‘아워플래닛’ 제공 풍선말미잘. ‘아워플래닛’ 제공

<로컬 오딧세이>는 기장·속초·태안·제주·울릉도·거문도 등 연안과 섬 지역을 다뤘는데, 이날 부산에서 열린 북토크는 기장 이야기에 집중했다. 기장이 맨 앞 장에 나온 이유는 말미잘, 말똥성게, 곰장어, 개상어, 멸치, 다시마 등 개성있는 식재료가 유독 많아서였다. “바닷속에 우아하게 있어야 할 녀석들이 왜 고무 다라이에?” 기장시장을 찾은 이들을 가장 놀라게 만든 존재는 말미잘이었다. 사실 이 낯선 생물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도 많지 않다. 독 없는 풍선말미잘은 붕장어를 잡는 과정에서 함께 걸려 올라오는 부수어획물로 대부분 폐기된다.


풍선말미잘과 아씨정구지로 맛을 낸 대만식 전병. ‘아워플래닛’ 제공 풍선말미잘과 아씨정구지로 맛을 낸 대만식 전병. ‘아워플래닛’ 제공

기장 학리에 사는 한 어부의 아내가 버려지는 말미잘이 아까워 어느 날 장어탕에 썰어서 넣었다. 이게 보기보다 너무 맛있어서 사람들에게 팔기 시작하면서 말미잘탕이 되었다. 꼬들꼬들한 식감과 고소한 내장 맛을 품은 말미잘은 탕, 수육, 전으로 거듭나며 기장만의 특별한 맛으로 자리 잡았다. 버려지던 말미잘이 어엿한 식재료로 올라선 것이다. 김 셰프는 일본에서 요리학교를 나온 뒤 두바이 등 국내외 여러 주방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는 이 낯선 식재료를 이용한 새로운 요리를 고민하다 ‘풍선말미잘과 아씨정구지로 맛을 낸 대만식 전병’을 완성했다. 말미잘이 서양식 파이로 재탄생한 것이다. 김 셰프는 “그저 ‘먹을 수 있게’가 아니라 ‘맛있게’ 먹으려면, 단점을 가리고 장점을 부각하는 기술적인 숙고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식재료로서 현 세대를 지나 다음 세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 셰프는 동남아산 새우는 먹지도 쓰지도 않는다. 새우 저인망은 부수어획 문제가 가장 심각한 어업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새우 1kg을 잡기 위해 버려지는 부수어획물이 5~10kg에 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멀쩡한 생명을 죽이고 쓰레기로 만들어 바다로 돌려보내는 현실이 안타깝다.


스페인 갈리시아풍 앙장구 그라탱과 피멘톤 크루통. 윤민호 제공 스페인 갈리시아풍 앙장구 그라탱과 피멘톤 크루통. 윤민호 제공

두 번째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괜찮은 식재료 성게다. 장 대표는 “지갑이 허락하는 한 성게를 많이 먹는 게 지구 환경을 위해서 좋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렇게 즐거운 환경 운동이 없다. 해조류는 육상 식물보다 훨씬 많은 탄소 흡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성게는 해조류를 무차별적으로 갉아 먹어, 바다 사막화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천적인 돔 개체 수마저 격감하며, 성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실정이다.

기장에서 말똥성게는 앙장구로 통한다. 기장 사람들은 “앙장구는 통째로 쪄서 숟가락으로 퍼묵으면 꼬습고 맛있어예”라고 여유 있게 말한다. 스페인 북부 갈라시아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성게 산지로 성게를 이용한 그라탱 방식 조리법이 유명하다. 김 셰프는 쌉쌀함을 누그러뜨리고 진한 풍미를 강조한 ‘스페인 갈라시아풍 앙장구 그라탱’을 소개했다. 세상은 넓고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앙장구는 늦겨울에서 초봄이 제철로 이 시기에는 생식소가 꽉 차고 맛 또한 절정에 이른다. 앙장구 생식소는 보라성게보다 짙은 주황빛을 띠며, 그 색만큼이나 맛도 더 진하다. 성게를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일은 해양 생태계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이다. 우리가 성게의 천적이 되어야겠다.


■해조류 소비하면 바다 숲도 넓어져

기장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요리가 곰장어다. 눈이 먼 장어라는 의미의 ‘먹장어(곰장어)’는 원래 먹지 않았다. 먹장어는 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군수물자로 가죽 수요가 급증하면서 활용이 확대되고, 전쟁으로 인한 식량 부족으로 먹게된 것으로 알려진다. 자갈치시장에서는 빨간 양념으로 볶은 곰장어볶음, 기장에서는 짚불에 구운 짚불 곰장어가 발달한 것도 특색이다. 이들은 자갈치시장에서 목격한 산 채로 머리를 못에 박아 껍질을 벗기고, 피가 묻은 몸통에 시뻘건 양념을 묻혀 연탄불에 올리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지금까지 뇌리에 박혔다고 했다.


봄동 스프링 롤과 스파이시 피넛 소스. ‘아워플래닛’ 제공 봄동 스프링 롤과 스파이시 피넛 소스. ‘아워플래닛’ 제공

김 셰프는 곰장어를 최대한 정갈하고 ‘딱 떨어지는’ 형태의 요리로 만들겠다고 일찌감치 방향을 잡았다. 또 곰장어집에서 고추와 마늘을 곁들인 쌈의 형태로 먹었을 때 조화가 훌륭했다는 생각에 스프링롤 요리를 만들기로 마음먹는다. 곰장어의 가장 큰 매력은 오독거리는 식감이다. 거기에 다른 식감의 층위를 더하면 그 매력을 더 부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든 ‘봄동 스프링롤’은 스프링롤의 쫄깃함에 봄동의 아삭함, 목이버섯의 탱글탱글함, 튀긴 샬롯의 바삭함을 더해 식감의 층위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곰장어 껍질을 태울 때 드러나는 지방의 자리는 피넛 소스가 고소한 풍미로 대신했다. 곰장어처럼 익숙하지만, 여전히 제 쓰임을 찾지 못한 재료에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주는 작업은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


개상어 조림. 윤민호 제공 개상어 조림. 윤민호 제공

이들은 또 기장시장에서 귀여운 식재료를 만났다고 했다. 개상어(두툽상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개상어는 다 커도 40~50cm이지만 상어의 일종이다. ‘두툽’은 두꺼비의 옛말인 두텁에서 유래했고, ‘개’는 가치가 낮다고 여겨져 붙었다. 기장에서는 개상어를 아나고 회처럼 얇게 썰어 먹는다. 장 대표는 “이거 껌인가?”라며 개상어회를 계속 질겅질겅 씹던 중, 개상어 식감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어졌다고 했다. 개상어 구이, 수육, 세비체까지 해봤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포기하기 직전에 남은 개상어로 반찬 삼아 조렸더니 식감도 좋고 맛있는 ‘개상어 조림’이 탄생했다는 이야기였다.


스페인식 멸치 초절임 보케로네스. ‘아워플래닛’ 제공 스페인식 멸치 초절임 보케로네스. ‘아워플래닛’ 제공

안타깝게도 상어는 오늘날 해양 생태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생존을 위협받는 어종 중 하나다. 그 주된 원인은 상어 지느러미 요리, 샥스핀 수프의 수요 때문이다. 상어 전체 체중의 3%에 불과한 지느러미만 취하고, 나머지는 바다에 버리는 ‘샤크피닝(Shark Finning)’이라는 잔혹한 관행이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

기장 멸치는 스페인식 멸치 초절임 ‘보케로네스’로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마지막으로 디저트 차례에서는 기장 대표 특산물 다시마가 선택됐다. 해조류는 광합성 과정에서 나무보다 수 배에서 수십 배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한다. 또한 성장 속도가 빠르고 오랫동안 탄소를 가두어 탄소 흡수원으로서의 잠재력이 크다. 나무 심는 것처럼 해조류를 더 많이 소비하면 그만큼 바다 숲도 더 가꾸며 넓어진다.


시오콘부를 더한 꽈배기와 제주 감귤 쿨리. ‘아워플래닛’ 제공 시오콘부를 더한 꽈배기와 제주 감귤 쿨리. ‘아워플래닛’ 제공

기장시장의 꽈배기집에서 디저트의 힌트를 얻었다. 꽈배기와 비슷한 추로스를 참고해 꽈배기 반죽에 기장 다시마를 넣었다. 꽈배기에 든 일식 식재료 ‘시오콘부’는 다시마를 채 썰어 간장·미림·설탕을 넣고 졸여서 만들었다. 튀긴 꽈배기 겉면에는 시나몬 가루와 설탕을 묻혔다. 달콤한 꽈배기에 점점이 박힌 다시마, 기장의 바다 풍미를 더한 새로운 조화가 완성됐다.


김태윤 셰프가 요리하고 있다. 윤민호 제공 김태윤 셰프가 요리하고 있다. 윤민호 제공

■지역 식재료 다양한 변주에 대한 고민

이상으로 기장 식재료의 변신 이야기가 마무리됐다. 요리를 맛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대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무한정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아워플래닛’은 먹거리의 획일성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 먹는 것도 충분히 다양하지 않을까? 김 셰프는 “우리는 지역의 고유한 음식 문화가 유지되고, 제철 식재료가 살아 있고, 용도에 따라 다양한 품종을 선택할 수 있고, 세대 간에 이어지는 조리법과 기억이 공존하는 다양성을 말하고 있다. 다양성은 미식과 지속 가능성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라고 말했다. 또 장 대표는 “우리나라에는 정말 맛있는 식재료와 음식이 많다. 죽기 전에 그 음식 ‘반에 반에 반만’ 먹고 간다는 목표로 열심히 찾아드셨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너무 유행만 좇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역 식재료의 다양한 변주에 대해서도 더 깊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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