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극장’이 사는 일상, 그곳이 곧 무대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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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이런 것도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1인 극단' 매머드머메이드 김은한 배우 책
식당·책방·카페, 일상서 만드는 무대 이야기
자신만의 독특·독창적인 연극 창작 비결 담아
에세이·시·희곡·콩트 장르 넘나들며 일화 소개

1인 극단 ‘매머드머메이드’로 활동 중인 김은한 배우의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공연 장면.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제공 1인 극단 ‘매머드머메이드’로 활동 중인 김은한 배우의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공연 장면.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제공

표지 사진 속 인물도, 저자의 이름도 낯설지만 묘하게 끌린다. 중간중간 내용을 읽다 보니 절로 웃음도 나고 기발한 생각에 신기한 느낌도 든다. 저자는 간단히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1인 극단 ‘매머드머메이드’로 활동하며 관객의 머릿속에 극장을 세우는 일을 한다. ‘멀리서 응원하고 극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 ‘침묵하는 것만이 그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게 분하다’ 등 극본을 쓰고 연극을 만들었다. 연극 제목들이 심상치 않다.

2015년 활동을 시작한 저자는 매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꾸준히 작품을 올리며 독창성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오래도록 글을 쓰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이 첫 책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연극을 만든 저자의 창작 비결 노트인 셈이다.

저자는 식당, 집, 책방, 카페, 지하철, 길거리 등 모든 공간을 무대로 만든다. 엉뚱한 상상력과 섬세한 입담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어느새 일상의 공간이 무대로 보이는 경험을 한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고무줄에서 귀엽고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탄생한다. 늘 “요건 생각 못 했지”라며 기발하고 재미있는 것을 들고 온다.

책은 기발하고 재미있는 걸 보여주는 사람답게 유쾌한 문장들로 이어진다. 많은 문인이 글을 배설에 빗대지만, 저자에겐 글쓰기가 변을 복사하는 일에 가깝다고 말한다. 글을 쓰면 복잡한 머리가 정리된다는데 저자는 복잡한 머리는 그대로이고 복잡한 글이 새로 남는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최근 몇 년간 관심을 가진 주제는 연극 만들거나 연극을 그만두는 내용을 연극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관객의 즐거움을 위해 계속 뭔가 시도하고 그걸 무대에서 보여준다. 무대에서 한 시간 동안 죽기, 자고 일어났는데 벌레로 안 변하기, 평론가를 섭외한 척 소개하고 실은 섭외하지 않았기에 무작정 기다리기, 연극이 끝난 양 관객과 대화 먼저 하기,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일본 전통 화술 예능인 ‘라쿠고’ 풍으로 공연하기, 미흡한 준비를 한참 변명하기, 관객과 스무고개 하기, 캠프장 텐트 안에서 옛날 장난감 자랑하기, 20분 동안 관객과 함께 극단을 세워 창단 공연하고 비평도 받은 다음 해체하기, 어제 본 연극을 엉터리로 소개하는 연극 하기, 공연 안내를 30분씩 하면서 시작 미루기, 관객이 극장에 안 온다면 내가 관객 집에 가서 연극을 하기 등 저자가 했던 시도 중 반만 소개했어도 이렇게 많다.

관객이 원하는 곳으로 찾아가 방문 공연을 끝내고 깨달음이 왔다는 고백도 흥미롭다. ‘왜 굳이 공연하고 싶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질문에 관해 스스로 찾은 답은 이렇다. 공연할 때는 오로지 현재일 수 있다. 그래서 좋아한다. 공연이 끝난 현실은 사후 세계라고 부르고 이때 과거와 현재로 머리가 가득 찬다. 무대 위에서는 몇 명이든, 무엇이 되었든 현재를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고 괴리가 적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한다.

무대는 한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같은 제목의 연극이라도 완전히 같지 않다. 무대가 서는 장소에 따라, 그날 무대에 선 이의 마음 상태에 따라, 누가 관객으로 와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책의 글 역시 꽉 짜인 한 편이 아니라 어쩌다 나누는 잡담 같고 독자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다가갈 것 같다.

책은 에세이와 시, 희곡과 콩트를 넘나든다. 어떤 상황이 떠오르면 어떻게 극화할지 알려주고 희곡까지 책에 실었다. 어떤 건 천재적으로 다가오고, 어떤 작품은 장난이 심하다 싶기도 하다.

하은빈 작가는 추천사에서 저자를 ‘휴대용 극장’이라고 표현한다. 객석에 초대된 이들은 저마다 상처받은 사람이고, 무대에서 상연되는 것은 있었지만, 없어진 것이 가지는 아름다움이다. 잠시 있었던 그런 것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김은한은 몸소 극장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저자가 몸으로 지은 극장이 관객의 머릿속으로 전달되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 김은한 지음/민음사/160쪽/1만 50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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