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남자들은 왜 친구가 없을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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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서 방송 크게 트는 남성
혼자라 타인 감정 못 느끼는 걸까
여성은 나이 들어도 활발한 교류
알코올 중독·고독사 성비 큰 격차

광역전철 동해선과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한다. 며칠 전 집에 가다 동해선 전동열차 안에 붙은 광고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2025년 모두 음주하세요’라니?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아니었다. 울주군에 오라는 뜻으로 ‘울주하세요’라고 쓴 광고 문구를 ‘음주하세요’로 오독했던 것이다. 이거 혹시 알코올 중독 초기 증세가 아닐까.

요즘 세상이 좋아 AI가 알코올 중독을 자가진단하는 ‘CAGE 테스트’라는 게 있다고 알려 준다. 아주 간단하다. 첫째, 술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둘째, 다른 사람이 술 마시는 것을 비판하면 짜증이 난다. 셋째, 술 마신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다. 넷째, 해장술을 마신 적이 있다. 이 중 2개 이상 해당하면 알코올 의존 가능성이 높다. 넷 다 해당하면…. 아이고!

온갖 인간 군상을 만나게 되는 곳이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이다. 요즘 들어 특히 자주 만나는 부류가 있다. 정치 관련 유튜브를 크게 틀어 놓는 분들이다. 세상 듣기 싫은 이야기를 억지로 들어야 하니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고 가방 속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는다. 이런 일로 뭐라고 하면 그건 남자들 사이에서 ‘우리 싸우자’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크게 틀어 놓고 듣는 사람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남성들이다. 그분들에게 친구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늘 혼자라서 남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자신에게도 슬픈 일이지만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도 해가 된다.

요즘 출판계는 여성이 다 먹여 살리고 있다. 교보문고가 집계한 ‘2024년 연간 도서 판매 및 베스트셀러 분석’을 보면 전체 도서 구입자의 비중에서 여성이 62%로 남성(38%)을 압도한다. 북콘서트에 가 봐도 여성이 대부분이다. 남자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퇴직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나이 든 남자들은 대체 뭘 하고 지내는지 알고 싶어졌다. 먼저 불길한 자료들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 알코올 중독자는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많다. 2022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자는 남성이 76%로 10명 중 8명을 차지한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나이 들어도 친구나 이웃과의 교류가 활발해 잘 살 수 있다. 어머니가 노인대학을 열심히 나갈 때였다. 아버지도 한두 번 따라갔지만 여자들만 많다고 불평하며(아버지, 그게 어때서요?) 이내 그만두었다. 나도 그렇지만 남성은 여성에 비해 감정 표현에 서툴다. 심지어 길을 물어보는 것까지 망설일 정도로 도와 달라는 소리도 잘 못 한다.

2023년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고독사 사망자 중 남성이 84.1%를 차지한다. 같은 해 성별 자살률도 남성이 여성보다 2.3배 높았다. 특히 80세 이상에서는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3.9배 높게 나타났다. 여성보다 남성이 사회적 관계망이 허약하고 고립에 더 취약하니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올해 초 국내에 출간된 영국의 코미디언 맥스 디킨스가 쓴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는 꼭 내 이야기 같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도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몇 년 전 나를 많이 사랑해 준 친구가 일찍 세상을 떠나며 더 이상 ‘절친’이라 부를 친구가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새삼 슬퍼진다. 얼마 전에는 직장에서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겨 고립된 적도 있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남자끼리의 인간관계는 더 남자다운 이가 다른 이의 머리 위를 점하는 위계적 질서라고 설명한다. 남자다움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돈을 더 잘 벌어야 하고, 성(性)적 행위를 더 욕망해야 하며,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도 상대방을 뛰어넘어야 한다. 성격은 쿨하고 호탕해야 하며, 삶에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어야 한다. 이외의 방식은 남성적이지 못한 것으로 치부하고, 특히 자기 감정의 솔직한 고백은 철저히 금기시된다는 것이다.

남자들끼리의 경쟁에서 밀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될까. 젊은 남성들은 온라인상에서 반페미니스트적 남성계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여성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며 피해망상을 심화해 간다. 중년 남성들은 음주와 우울의 늪에 허덕이다 떠밀리듯 생을 등진다는 것이다. 영국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 같다.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어르신들의 심리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책을 누가 볼까 싶지만, 검색해 보니 부산 시내 웬만한 도서관에서는 대부분 대출 중이라 빌려보기가 어렵다. 설마하니 남자들이 이런 책을 열심히 보는 것일까. 혹시 남편의 책상 위에 살짝 올려두기 위해 여성들이 빌려 간 것은 아닐까.

박종호 스포츠라이프부 선임기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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