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각하(閣下)와 각하(却下)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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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요즘 매스컴에서 대통령 각하라는 소리도 들리고, 탄핵심판 각하·기각이라는 말도 들린다. 모두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용어인데다, 작금의 사회는 한자어에 대한 문해력이 대단히 낮아진 상태이므로,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넘어가기 어려울 듯하다. 각하(閣下)는 폐하(陛下), 전하(殿下), 저하(邸下), 각하(閣下), 합하(閤下), 대하(臺下), 궤하(机下), 안하(案下), 슬하(膝下), 족하(足下), 귀하(貴下) 계통의 용어 중 하나이다.

폐(陛)는 섬돌이라는 뜻으로 황제가 있는 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가리킨다. 신하가 황제를 처음 대할 때 섬돌 아래에 엎드려 있어야 한다. 폐하는 나를 낮춤으로써 남을 높이는 구조를 가진 말이다. 전하는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을 정전으로 하는 국왕을 지칭하는 용어이자, 근정전 아래에 도열한 신하의 위치를 표시한다. 불교에서도 대웅전·팔상전(八相殿)·대적광전(大寂光殿)·비로전(毘盧殿)·용화전(龍華殿)·미륵전(彌勒殿)과 같이 부처님을 모신 곳을 전이라고 하고, 절 안에서 가장 격이 높은 건물이다. 다음으로 저하가 있는데, 같은 논리로 저(邸)에 사는 존귀한 존재인 조선시대 세자를 가리켰다. 그런데 동궁의 거처는 자선당(資善堂)·계조당(繼照堂)·시민당(時敏堂) 등이 있었으므로, 저하는 당하(堂下)와 동격인 셈이다. 스님들의 영정을 모신 조사당(祖師堂)이나 유교의 성현들을 모신 명륜당(明倫堂) 등이 모두 같은 격을 가진 건물이다.

'부친상' 잘못 이해 '수상 축하' 대꾸

한자어 몰라 '심심한 사과' 오해 예사

문해력 위기는 한문·한글 마찬가지

책·신문 대신 유튜브 익숙해진 탓

글 쓸 줄 모르고 말만 하는 사회

글 읽기·글쓰기 가치 되새겨야

각(閣)·합(閤)·대(臺)가 그 뒤를 잇는 건물이다. 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물로는 궁궐에는 규장각·장서각·동십자각·서십자각, 한양 도성에는 보신각, 민간에는 효자각·열녀각, 절에는 범종각·삼성각·칠성각이 있었다. 합이라는 이름을 가진 예로는 조선 궁궐 내에 사현합(思賢閤)·체원합(體元閤)·공묵합(恭默閤)·곤녕합(坤寧閤)과 같은 부속 건물들이 있었다. 합하라는 말은 대원군을 부를 때 대원위 합하라고도 하였다. 대(臺)는 태종대·신선대·이기대·몰운대처럼 경관이 빼어난 곳에 세운 건물을 뜻하는데, 경무대·청와대처럼 대통령의 관저 이름으로도 쓰였다. 궤하와 안하는 모두 책상 아래라는 뜻으로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 앉아 있는 책상 아래에 있다는 뜻으로 쓰였다. 슬하와 족하는 상대에 대한 나의 위치를 무릎과 발로 본 것인데, 족하가 슬하보다 상대를 조금 더 높이는 말인 셈이다. 과거에 청와대에 사는 대통령을 각하라고 하였으니 썩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는 곳은 대통령 관저라고 하였으니 격에 맞지 않는 말이다.

한편 탄핵심판 각하(却下)의 각하는 청구 또는 신청이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심리할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내리는 결정이다. 기각(棄却)은 청구 또는 신청 내용에 이유가 없다고 판단될 때 내리는 결정이다.

우리말 어휘의 약 70%가 한자어이고 특히 개념·행정·법률과 관련된 용어들이 대부분 한자어이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한자와 한자어 교육을 등한시한 결과, 적잖은 사람들이 한자에서 비롯된 어휘들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간혹 소소한 논쟁을 야기하기도 한다.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는 말에 ‘사과를 왜 심심하게 하느냐, 제대로 해야지’ 혹은 ‘왜 달콤한 사과를 주지 않고 심심한 사과를 주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심심(甚深)하다’와 ‘사과(謝過)’라는 말이 한자어인 줄 모르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친상을 당했다’고 하자, ‘무슨 상인지 모르겠지만 축하한다’고 하거나, 교수가 ‘금일’이라고 하자 ‘금요일’이라고 생각한 학생이,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금일’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용어를 사용하면 되겠느냐고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한자어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사흘을 4일이라는 뜻으로 알기도 하고, 자격을 나타내는 ‘로서’와 도구를 나타내는 ‘로써’는 거의 구별하기를 포기한 상태이다. ‘학생으로서 공부를 게을리해서 되겠느냐’라는 말을 대부분 ‘학생으로써’라고 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문해력 저하는 단순히 한자어를 가르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글 읽기와 글쓰기를 하지 않은 구조적인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책이나 신문 같은 글자로 된 미디어보다는 유튜브와 같은 말로 된 미디어에 익숙해진 탓이다.

사회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휘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또한 전제 군주 시대, 군사 독재 시대에 쓰던 각하라는 말과 기각과 각하의 각하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글은 쓸 줄 모르고 말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건 우리 사회가 우중(愚衆)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조짐이 아닐까? 입시이든 취업이든 글쓰기 능력, 개념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시험하는 비상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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