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문학관 건립 속도 내야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부산문학관 건립 추진 논의가 시작된 해가 2004년이니 20여 년이란 세월이 강물처럼 흘렀다. 초창기 부산문학관 건립을 추진했던 이들의 헌신적인 노고를 이 지면에 다 실을 순 없다. 그들은 지역의 문학인이었으며 언론인이었고 지역문화를 선도해 가고자 했던 문화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부산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립문학관이 없는 지자체임을 뼈아프게 인식하면서 척박한 토양에 문화의 씨앗을 뿌리고자 했던 개척자이자 선구자들이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부산문학관 건립이 또다시 지루한 논쟁 속으로 빠지며 지난 20여 년간의 노력이 빛을 잃고 있다.
문학관은 인류의 문학유산을 보존하는 공간이다. 시대별 인간 삶의 다양성과 구체성을 담아내는 가장 기초적인 문화 부문으로서의 문학작품은 언제나 인류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지역에 세워지는 문학관은 이러한 문학작품의 소실을 막고 작품을 생산해 낸 작가들의 정신과 문학적 가치를 계승하는 거점 역할을 한다. 오늘날 문학관은 창작과 비평의 전 영역에서 문학적 소통과 체험을 통해 문학 자료들이 박제된 유물로 전락하지 않도록 현재화하는 작업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다.
하드웨어로서의 문학관이 몸체라면 문학작품을 위시한 문학콘텐츠는 문학관을 구성하는 나머지 중요한 축이다. 우리가 흔히 문학아카이브라고 부르는 것이 이것이다. 문학아카이브는 중요 작가의 친필 원고와 유고, 소장품 등을 수집, 관리함으로써 문학유산을 보존하는 기본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6년에 공포된 문학진흥법과 2018년 8월의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안에 따라 본격적인 문학진흥계획 정책의 일환으로 아카이브가 연구되고 있다.
문제는 이렇듯 제도적 차원에서 보장되고 실제로도 문화 창출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문학관이 유독 부산에서만 20년째 표류 중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문학관 부지 선정 과정에서 부산시가 보인 문화행정의 일단은 부산문학관 건립을 염원하는 이들의 마음에 많은 생채기를 남겼다. 부산문학관을 세계적인 수준의 외양과 질을 갖춘 명실상부한 문학관으로 만들겠다는 부산시의 화려한 수사와는 달리 지역에 만들어질 문학관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도 방향성도 없는 일회성 정책으로 일관한 탓이었다. 그리고 부산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와의 소통도 문제이다. 최근 부산문학관 예정지로 알려진 금정문화회관 옆자리가 과연 세계적인 문학관이 세워질 공간인가? 문학관 밖의 환경이 시민친화적이고 자연친화적이지 못할 때, 그 문학관은 미래지향적일 수가 없다.
이제 더 이상 부산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담아낼 부산문학관 건립이 늦춰져서는 안된다. 지역문인들은 물론 뜻있는 부산시민이라면 누구라도 부산문학관 건립의 주춧돌을 놓겠다는 심정으로 함께 나서야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한강의 말처럼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곁을 영원히 지킬 문학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