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규의 법의 창] 미래 세대의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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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정인 변호사

최근 청년들 헌법에 대한 관심 고무적
대통령·국회 절대 권력 시민에 악영향
권력 집중 완화할 헌법 개정 고민해야

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 AI에게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경제적, 사회적 안정성이 높고, 고도의 기술력, 인프라, 생활수준 등을 갖춘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선진국이 되기에는 갈 길이 멀다고 느껴진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원제: Why Nations Fail, 저자: 다르온 아셈오글루·제임스 A. 로빈슨)라는 책에서 설명하듯이 대한민국이 ‘포용적인 제도’를 가진 국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포용적인 제도는 대다수 사람들이 경제적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인권과 법의 지배를 보장하며, 개인의 창의력과 혁신을 장려하는 제도 등을 말하는데, 우리나라가 포용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성문의 근거는 대한민국 헌법이다. 우리 헌법은 국민주권, 민주주의, 법치주의, 기본권 보장,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 존중 등을 규정하여, 포용적 제도임을 증명하고 있다.

필자의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일 때, 아이는 학교에서 헌법을 배우고 있으나, 법전에서 헌법 조문을 직접 본 적은 없다고 했다. 필자는 아이에게 헌법 읽기를 제안하여, 매주 한 번 헌법 130개 조문을 하나씩 같이 읽고, 내용을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행히 아이는 재미있어 했고, 약 1년 동안 헌법 읽기를 통하여 필자와 아이는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문을 읽으면서, 국가란 무엇인지를 같이 생각했다. 아빠로서 허세를 더해 막스 베버는 국가를 “합법적인 폭력을 독점하는 조직”으로 정의했다고 얘기했다. 당시 아이는 국가와 폭력이라는 단어의 연결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 같았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자유권, 평등권 등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조문을 읽으면서는 ‘인권’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 얘기했다.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중대한 권리는 자신이 겪고 싶지 않은 일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며, 자신이 기뻐하는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선택의 자유다”라는 글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이해하면, 공동체 구성원 상호 간 타인의 권리를 존중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배운 논어의 “자기가 타인으로부터 강요받고 싶지 않은 것은, 자기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라는 구절을 필자에게 얘기해 주었다.

헌법 조문을 읽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아이는 진지한 눈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간혹 필자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했다. 아이와 함께 헌법 읽기를 통해 얻게 된 것은 헌법을 통한 세대 간 소통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헌법 읽기로 조부모와 손자녀, 부모와 자녀 세대 간 소통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긍정적일지 알 수 없지만, 서로의 생각을 깊이 이해하는 하나의 수단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기사에, 서울의 한 대학에서 비인기 과목이었던 ‘헌법’ 강의가 수강 신청에서 큰 인기를 끌고, 헌법 관련 강의인 ‘시민교육과 헌법’, ‘민주시민과 헌법’, ‘한국정치사 입문’ 등의 수강 신청률이 지난해에 비해 높아졌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우리 헌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1987년 개정된 것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나, 여러 이유로 약 38년 동안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헌법을 배우려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면, 그들은 대한민국의 권력구조를 이해하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의식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다. 또한 지금의 헌법이 가진 한계나 문제점에 대하여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2025년 3월 현재 한국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늦었지만 세대, 지역 등 사회의 다양한 층위의 통합을 위해서 헌법 개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다.

영국의 정치철학자인 로드 액턴은 “권력은 부패를 일으키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권력이 너무 집중되거나 절대적인 형태로 존재할 경우 그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일컬어지는 지금의 헌법 아래 대통령뿐만 아니라 반수 이상의 의석을 가진 정당이 실질적인 대화와 타협 없이 독단적인 입법권을 행사할 때, 둘 다 절대 권력이 될 수 있고, 시민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헌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지금의 헌법보다 국가 권력을 더 나누어 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걸맞은 더 나은 헌법을 갖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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