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별이 된 아이
변정희 전 (사)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상임대표
텅 빈 학교 내 돌봄교실 안전 사각지대
초등교육 현장 총체적 위기 다시 표출
‘하늘이법’ 등 사후 재발방지책 쏟아져
정신 건강에만 맞추는 건 본질서 이탈
폭력적 전조 현상에 대한 대응이 핵심
학교 공동체 유대와 신뢰 회복이 중요
얼마 전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초등학생 피살 사건은 대한민국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무엇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은 가해자가 그 학교의 교사이며,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라 여겨졌던 학교에서 범죄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평범한 하루를 시작했을 유가족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었을 학급 친구들과 돌봄 교사를 비롯하여 동료 교사와 학교 관계자들이 겪었을 트라우마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꿈도 많고 명랑했던 한 아이가 겪어야 했을 고통을 차마 다 헤아리지 못해 며칠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초유의 일이자 예외적인 범죄 사건이지만 한편으로는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의 중심 화두가 되었던 초등교육 현장의 총체적 위기가 또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교육 현장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한 서이초 교사 순직 사건이 불과 2년 전이었고 그 전후로도 초등교사의 죽음이 이어져 왔다. 한편 정부는 늘봄학교 등 돌봄교실을 확대해 왔지만 어느 돌봄 교사의 지적처럼 텅 비어 있는 학교 내에서 유일하게 운영되는 돌봄교실은 안전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가장 약한 존재가 가장 큰 피해를 입고야 마는 비극 앞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감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피해 아동의 이름을 딴 ‘하늘이법’ 마련을 위해 정치권이 전에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교육부도 강력한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했다. 가칭 ‘하늘이법’에는 교원에 대한 정기적 심리검사 시행, 직무수행이 어려운 교원에 대해 직권으로 휴·면직을 권고할 수 있는 질환교원심의위원회 법제화, 교내 폐쇄회로(CC)TV를 확대 설치해 사각지대를 없애는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그러나 사건 발생 직후부터 가해자가 우울증을 오래 앓아 왔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법제화와 대책 마련이 교원의 정신 건강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모양새에 우려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정신 건강 전문의들은 우울증과 범죄를 연관 짓는 언론 보도가 편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면서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 중 고작 10%만 치료받는 우리의 현실은 큰 문제”라며 “정신 건강에 대해서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공개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권명환 해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부장 역시 우울증이 이와 같은 폭력과 인과관계가 없음을 강조한다.
전교조와 교사노조에서도 사안의 중대성이 큰 만큼 대책 마련에 있어 충분한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교원들은 고위험 교원과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교원을 구별해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정기적인 심리 검사는 오히려 자신의 증상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결과를 낳거나 필요한 경우에도 질병 휴직을 선택하지 못하는 등 교육 현장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교사노조연맹이 교원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90.7%는 하늘이법의 초점은 ‘위중한 폭력적 전조 증상을 보이는 학교 구성원’에 맞춰져야 한다고 봤다. 또 97.1%는 정신질환에만 초점을 둔 법을 제정하면 교육활동 중에 발생한 심리적 어려움을 드러내기가 어려워 오히려 문제가 커질 것이라고 답했다.
점진적 사회의 발전을 주장한 철학자 칼 포퍼는 “추상적인 선의 실현을 위해 힘쓰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한 바 있다. 위중한 폭력적 전조 현상이 행위로 드러난 학교 구성원에 대한 긴급한 분리 조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라는 교사노조의 지적에 공감이 가는 이유다. 가정폭력이 방치될 경우 심각한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방치될 경우 상상하지 못할 강력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 해결의 초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정규수업과 돌봄교실, 귀가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안전 문제는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과제로서 돌봄 교사를 비롯하여 관련 주체들의 참여 속에 정책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해체 이론에서는 범죄 예방의 주요한 접근 방법으로 지역사회의 ‘집합적 효율성’을 강조한다. 지역 주민들의 총체적인 교류, 유대 관계가 범죄 감소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학부모, 학생, 교사가 그동안 쌓아 온 신뢰가 무너지지 않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에 힘을 합쳐나갈 수 있도록 교육부와 정치권이 힘써 주길 바란다. 아이들의 환한 얼굴이 별이 되는 세상, 아이들의 비극이 법이 되는 세상은 너무 가슴이 아프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우리를 이끈다. 하여, 소망한다. 예쁜 별로 간 하늘이가 우리를 비추는 작은 빛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