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 맹종, 순종, 그리고 아멘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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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옳고 그름 따지지 않는 믿음
한낱 인간 따르는 결과 초래

허울의 신앙에 욕망 더하면
증오와 폭력 치닫게 될 수도

내 귀에 들려오는 저 말씀이
신의 것인지 묻고 또 묻기를

기독교 성경은 ‘신은 번제 같은 제사보다 순종을 더 좋아하신다’고 전한다. 신이 좋아하시므로 순종하는 것은 종교인이라면 너무도 당연할 일! 종교인은 순종의 삶으로 신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순종(順從)이란 ‘순순히 따름’이다. 순순히 따름은 옳고 그름을 덮어놓고 무작정 따르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맹종(盲從)이다. 맹종은 신이 아니라 한낱 인간을 따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내게 들리는 저 말씀이 신의 말씀인가 아니면 설교자나 예배인도자의 것인가. 이를 처절하게 가리지 않고 무작정 따르는 건 그 자체로 신에 대한 망령이요, 따라서 죄가 된다.

맹종의 대표적인 예가 ‘아멘’ 남발이다. 아멘은 신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요 믿음의 고백이다. 굳이 뜻을 말하자면 ‘응당 그러합니다’ 정도이겠다. 입으로든 마음으로든 아멘을 표하는 행위는 곧 신을 떠올리고 간구하고 열망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그러므로 아멘은 신의 진실 안에서만 외쳐야 한다.

한국 교회에서 아멘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발되는 광경을 자주 본다. 설교자의 말 한마디 끝날 때마다, 그것이 신의 말씀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아멘을 외친다. 심지어는 설교자가 청중에게 아멘을 강요하는 일도 왕왕 있다. 이런 아멘은 공허한 메아리에 다름 아니다. 아멘을 이렇게 무분별하게 남발해서는 안 된다. 이는 순종이 아니라 맹종이다. 맹종은, 거듭 말하지만, 망령에 떨어지고 죄가 된다. ‘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기독교 십계명 가운데 하나다. 아멘을 함부로 남발하는 건 곧 신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이다. 그 죄가 가늠할 수 없을 만치 크다.

성경에는 베드로가 죽음의 고난에서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경에 굳이 이 장면이 넣어야 했을까. 여기엔 심오한 가르침이 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보다 자신이 예수를 더 믿고 따른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고난이 닥치자 그의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의 믿음은 맹종이었고, 그래서 나약했다. 두려움과 후회로 베드로는 자신의 믿음을 처절하게 갈등하고 고민하고 질문했다. 한참 뒤 부활한 예수가 찾아와 물었을 때 그는 “참으로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때 베드로의 믿음은 과거의 믿음과는 달랐다. 그는 맹종이 아니라 진정한 순종을 고백했던 것이고, 그런 순종이 있어 베드로는 이후 교회를 반석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맹종은 증오와 폭력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맹종에 신앙의 껍데기가 덧씌워지고 인간의 욕망이 거기에 얹어지면 위험성은 극에 달한다. 잘못의 선후를 따지기에 앞서, 1000년 전 십자군 전쟁이 그랬고 오늘날 중동에서의 반복되는 살육이 또 그렇다. 한 사람이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지만 다수가 망상에 빠져 있으면 종교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종교가 온전한 종교이겠는가. 오히려 더 참혹하고 더 거대한 광기의 집합체일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극우의 광기로 인해 몹시도 불안하다.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의사 표현이야 누가 뭐라고 하겠냐만, 극우 집단의 행태는 도를 한참 넘고 있다. “척결” “처단”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입에 달고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얼마 전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가 좋은 예다. 법원 시설을 마구 부수고, 경찰관을 폭행하고, 불까지 지르려 했다. 이로 인해 수십 명이 처벌될 처지에 놓였는데, 상당수가 특정 교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젊은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들이 저지른 행위가 화해·포용·사랑을 최우선 의무로 삼는 기독교의 본래 모습이 아님은 분명하다. 스스로 나름의 정당성을 강변할지 모르나, 이들이 신이 아닌 특정 인간을 맹종한 결과가 아닌가 싶어 심히 걱정이다. 교회는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중추여야 할 젊은이들이 행여나 일부 극우 인사의 말과 논리를 맹종한다면 한국 기독교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 특히 젊은 기독교인은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져야 한다. 신앙을 의심하라는 게 아니다. 지금 자신이 신앙이라 여기는 게 혹여 맹종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게 들리는 저 말씀이 진정 신의 말씀인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불교에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이 있다. 부처를 죽이고 조사도 죽여라? 어찌 부처와 조사를 생물학적으로 죽이라는 말이겠는가. 귀에 들리는 대로 맹종하지 말고 쉼 없는 의문을 통해 부처와 조사조차 뛰어넘으려 노력해야 비로소 진리에 닿을 수 있다는 경구인 것이다. 이게 꼭 불교에서만 통용되는 가치는 아닐 터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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