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한테는 이름 지어주면 안 되는데"… 의기소침 독수리가 사는 야생동물치료센터 [기자니아]
귀여운 얼굴에 감춰진 야생성에 흠칫
성인 남성만 한 독수리 제압하기도
생태보존을 위해 헌신하는 수의사에 감동
[편집자주] 한국전쟁 피란민들을 품으며 뻗은 산복도로 위로 역사가 살아 숨쉬는 도시, ‘환적 규모 세계 2위’ 최고 수준의 항만을 보유한 글로벌 해양도시, 부산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다채로운 모습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솟은 산과 드넓은 바다, 초고층 빌딩과 산복마을이 공존하는 풍경만큼이나 독특하고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오늘도 부산을 터전으로 힘차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산일보는 부산 사람들의 일과 직업을 ‘기자니아’라는 콘텐츠에 담고 있습니다. ‘기자니아’는 ‘키자니아’(어린이 직업 체험 테마파크)와 ‘기자’의 합성어로, 기자들이 직접 부산의 다양한 직업을 체험한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직업을 통해 부산의 매력과 역사를 보여주고,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영상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됩니다. 유튜브에 ‘기자니아’를 검색해도 보실 수 있습니다.
도심 속에서 야생동물을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닙니다. 도심지인 부산에서도 생각보다 많은 야생동물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부산은 국내 최대 철새 도래지인 을숙도가 위치해 있어, 다양한 철새를 비롯한 멸종위기 동물들을 볼 수 있지요.
생각보다 많은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죽거나 다칩니다. 을숙도엔 도심에서 다친 야생동물을 치료하는 '야생동물치료센터'가 있습니다. 대부분 창문에 부딪히거나 차에 치이는 등 인간의 활동에 의해 다친 동물들이 이곳으로 옵니다. 기자가 이들을 치료해 안전하게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일일 수의사가 돼 봤습니다.
■ 맹금류 부리에 '콱'
지난달 8일 오전께 도착한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내 야생동물치료센터 건물에 들어서자 강한 '야생'의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부터 새들의 왕이라고 불리는 독수리까지, 야생에서의 자유로운 모습 대신 철창 안에서 의기소침한 채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날 기자에게는 '보정'이라는 업무가 주어졌는데요, 처치를 하는 동안 동물들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손으로 잡는 작업입니다. 너무 세게 잡으면 오히려 더 다칠 수도 있고, 너무 약하게 잡으면 몸부림치면서 오히려 동물이 더 다칠 수 있어 섬세한 힘 조절이 필요한 조처입니다.
저의 첫 '환자'는 맹금류로 잘 알려진 '황조롱이'였습니다. 날개가 다쳐서 보라색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요, 오늘은 바로 이 붕대를 교체하는 처치가 이뤄집니다. 수의사 선생님이 앞을 볼 수 없도록 수건으로 황조롱이의 눈을 감싸 처치대로 옮겨왔습니다. 조류를 보정할 때는 발을 움직일 수 없도록, 두 발과 날개를 손으로 모아 잡아야 합니다. 수건을 걷자 날카로운 발톱이 드러났습니다. 한 손으로는 날개, 또 다른 한 손으로는 두발을 모아 움켜쥐었더니, 황조롱이가 움찔거렸습니다. 놀라 손을 놓을 뻔했지만, 다칠 수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참고 보정 업무에 집중했습니다. 또 깁스로 뻣뻣해진 날개 부분을 직접 손으로 접었다 폈다 하면서 부드럽게 마사지도 해주었습니다.
실제로 수의사분들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동물을 처치하다 크게 다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센터에서 근무하는 류현상 수의사는 "황조롱이 같은 맹금류의 부리는 사냥감을 즉사시킬 만큼 위험하다. 주로 부리에 물리거나 발톱에 찍혀 다친다"며 "당장은 다쳐도 동물을 진정시키는 게 중요해서 다칠 때는 아픈 줄 모르다가 상황이 종료되면 아픔이 몰려온다"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 성인 남성만한 독수리 제압..."발톱에 스치면 파상풍"
부산 도심에서 가장 많이 신고되는 야생동물 중 하나가 바로 독수리입니다. 독수리는 매년 11월이 되면 번식지인 몽골에서 3000㎞를 날아 한국을 찾고 이듬해 2~4월 다시 돌아갑니다. 몽골 내 추위를 견디지 못하거나 먹이 경쟁에서 밀린 새끼 독수리들이 중국, 북한, 우리나라 등으로 이동해 옵니다. 이 과정에서 탈진한 독수리들이 다시 날아가지 못하고 도심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날 보정한 독수리도 비교적 어린 개체로, 전날 센터에 들어왔습니다. 한번 해봤다고 1m가량되는 독수리의 눈을 나름 능숙하게 수건으로 가린 채 발을 덥석 잡았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이 수액을 놓기 시작하자 발을 움찔거렸고 이때 조금 더 힘을 주어 잡았습니다. 다행히 다치지 않은 채로 처치가 끝났습니다.
센터의 중요한 또 다른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윙택(wing tag)'을 다는 작업입니다. 치료가 끝난 비교적 건강한 독수리들이 자연으로 복귀하기 전에 GPS장치가 달려있는 태그를 날개에 구멍을 내 다는 것을 말합니다. 몽골과 한국을 오가는 독수리들의 이동 경로 등을 연구를 위한 목적입니다. 먼저 야외 있는 큰 계류장에서 회복을 마친 독수리를 그물로 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수의사 선생님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독수리를 향해 거대한 담요를 던져 눈을 가리자마자, 기자가 재빠르게 그물로 몸을 감쌌습니다. 놀란 탓인지 독수리를 허공을 향해 부리를 벌려 마구 쪼아댔습니다. 겁이 나 뒷걸음질을 치고야 말았습니다. 그때 수의사 선생님이 빠르게 온몸으로 독수리를 안았고, 그제야 기자가 독수리 다리를 움켜잡아 수술실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마취된 독수리의 다리를 기자가 움켜쥔 채 태그를 달고 있는 와중에, 마취가 깼습니다. 1m가량 되는 큰 날개를 펄럭이자 주변 사물이 와르르 쏟아졌습니다. 그때 수의사 선생님이 저에게 "절대로 놓으면 안 됩니다. 발톱에 스치면 바로 파상풍입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야생동물 치료해 주러 왔다 제가 병원에 실려갈 판이었습니다. 마구 발버둥 치는 독수리의 발톱과 발은 제 손보다 컸습니다. 살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눈을 꼭 감고 다시 독수리가 마취에 들어가기만을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금세 진정했고, 그제야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후련함
이날은 퇴원하는 동물도 있었습니다. 차에 치여 다리와 골반이 부러진 너구리였습니다. 다리를 절단할 위기도 여러 번 겪었지만, 수의사 선생님들의 치료와 보호 덕에 이날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케이지에 너구리를 넣고 센터에서 차량으로 30분가량 떨어진 야산으로 향했습니다. 창살 너머로 비치는 너구리의 눈빛은 두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케이지 문을 열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몇 초간 케이지 안에서 머뭇거리더니, 금세 앞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러나 다시 저희가 있는 쪽을 다시 살짝 바라보고는 후다닥 산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너구리 나름대로의 감사 인사를 전한 것이 아닐까요.
야생동물 수의사에게 금기시되는 행위가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거나 정을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내손으로 먹이고 치료한 동물에게 어찌 정이 안 들 수 있겠습니까. 이날 너구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김용우 수의사 선생님은 "잘 뛰어가네"라고 나지막이 말하면서 웃으셨습니다. 정을 주면 안 된다고 했지만, 이미 수의사 선생님의 마음속에는 진하게 자리 잡은 듯 보였습니다.
하나의 생물 종은 다른 무수히 많은 생물종과 생태적으로 연관돼 있어, 한 종이 사라지면 적어도 30종 이상의 종도 연쇄적으로 사라진다고 합니다. 도심 속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건, 이들을 보호하고 치료해 주는 수의사 선생님들 덕이 아닐까요.
'혹시 내가 치료해 준 새인가?' 걷다 문득 하늘 위 날아다니는 새를 발견하면 웃으며 생각해 보는 요즘입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