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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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소설가

거짓과 폭력이 사라지기를
사랑과 배려가 넘치고
공정과 상식이 일상이 되기를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펴지기를
건강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지난해엔 우리를 충격에 빠뜨리는 일이 참으로 많았다. 그 여파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 그런지 설날이라는 명절 앞에서도 마음 한구석이 뒤숭숭하다. 하지만, 이 모든 혼란과 슬픔이 걷어지고 더 나아진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설날도 새해라고 하지만, 양력 1월 1일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1월 1일은 자정이 되기 전, 남은 몇 초를 카운트하며 과거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시간이 도래한 감회를 만끽한다. 바뀐 달력을 펼치고 빨갛게 표시된 날짜를 헤아려 한 해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구상하기도 한다.

설날에는 차례를 지내고 세배하고 떡국을 먹는다. 그 과정에 오가는 것에 ‘덕담’이 있다. 대체로 “올해도 건강하고 복 많이 받아라”라는 의미로 건네진다. 상대에게 보내는 일종의 기원이고 주문(呪文)이기도 하다. 간혹, 덕담을 빙자하여 진학이나 결혼, 취직 등을 재촉하는 요구사항이 나오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주문을 듣고 나서야 1년을 맞이할 모든 절차가 끝난 느낌이다.

미지의 한 해를 헤쳐 나갈 마음의 준비를 끝낼 즈음 더럭 궁금증이 생긴다. 뜻하지 않게 닥칠지 모를 불운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주나 토정비결로 신년운세를 점쳐본다. 복조리를 문 앞에 걸어 복이 걸려들길 바라고, 혹은, 하늘 높이 연을 날려 액운을 쫓기도 한다. 새해의 주술적인 감성은 다른 나라에도 얼마든지 있다. 중국에선 폭죽을 터뜨리고 붉은 봉투(홍바오)를 주고받으며 부와 행운을 기원한다. 일본에서는 ‘오미쿠지’라고 불리는 점괘를 뽑아 한 해의 운수를 점치고, 나쁜 운세가 나오면 이를 신사에 묶어둬 불운을 피하려 한다. 스페인에선 자정이 되기 전 12개의 포도를 먹으며 한 알씩 먹을 때마다 한 달의 행운을 빈다고 한다. 그리스는 새해 첫날 문 앞에 석류를 깨뜨려 그 씨앗이 많이 튀어나올수록 더 큰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더 나은 내일을 기원하는 이런 모습은 보편적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희망의 표현이다. 이런 표현을 우연을 바라는 미신이라 치부하는 건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격이다. 이것은 곧 삶에 대한 의지와 호기심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우연과 필연의 회오리 속에서 뭔가를 붙잡고자 했고, 오랜 역사를 거쳐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기도하고 기원한다. 그 대상이 인간을 창조한 거대한 힘일 수 있고 해와 달, 오래된 나무나 탑일 수도 있다. 상상의 모습일 수 있고, 과학적 이치나 원리일 수도 있다. 심지어 바닷가에서 주운 작은 조약돌을 행운의 돌이라 부르며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무탈과 행운을 기원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기도한다고 소원이 무조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도한다고 원하는 바가 모두 이루어진다면 그 행위는 그냥 성과를 이뤄내는 일반적 상식이라 할 수 있다.

사실은, 기도해도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하는 것이다. 다만, 간절히 바랄 뿐이다. 어쩌면 소원 성취는 간절한 마음, 그 간절함이 유발한 행동이 만들어 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새해를 맞이하여 기도한다. 기왕 하는 김에 차고 넘치게 기도한다. 이 사회에 거짓과 폭력이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사랑과 배려가 넘치고 공정과 상식이 일상이 되기를 기원한다.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와 공존만이 온 누리에 펴지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 건강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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