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울산특수교육원 건립을 허하라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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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혁 동부경남울산본부 차장

대도시에서 사회적 약자와의 동행은 그럴싸한 구호에 불과한 걸까. 곡절 많은 울산특수교육원 건립 사업을 보면 이런 회의감이 든다.

고 노옥희 울산교육감이 2022년 재선과 함께 핵심 공약으로 추진했으니 사업이 공전된 게 올해로 4년째다. 장애 학생들이 보다 전문화된 특수교육을 받으며 마음껏 꿈을 펼치길 바라서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노 교육감은 특수교육원 자리로 옛 효문분교를 점찍었으나, 접근성 문제로 포기했다. 번화가가 밀집한 남구에선 가용 부지를 찾기 힘들었다. 그해 12월 노 교육감이 갑작스레 쓰러졌다. 여느 사업처럼 특수교육원 건립에 대한 관심도 시나브로 사그라졌다.

2023년 남편 천창수 교육감이 바통을 이어받아 꺼져가던 특수교육원 건립 사업에 불씨를 살렸다. 북구 신도시에 있는 제2고헌초등학교(가칭) 부지에 특수교육원을 짓기로 했다. 교육부에서 수요 부족으로 학교 신설 불가 판정이 난 곳이었다.

반대 여론이 심했다. 인근 주민들은 이곳에 원래 계획대로 학교를 건립해 달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심지어 특수교육원이 들어서면 주변 집값을 떨어트린다는 가짜 뉴스가 나돌았다. 2017년 부산대 교육발전연구소가 내놓은 연구 결과에는 오히려 특수학교 인접 지역에서 집값이 오른 경우가 많았다. 시교육청은 수영장과 도서관을 같이 지어주겠다며 여러 차례 설득했으나 끝내 주민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다시, 원점이었다.

특수교육시설은 언제나 도심 외곽에만 있어야 할까. 의문이 맴돌았다. 수영장과 도서관을 앞세워 주민 허락을 구하고 특수교육원을 끼워 넣는 본말이 전도된 현실이 안타까웠다. 제2고헌초등학교 부지는 잡풀과 쓰레기, 공사자재가 뒤섞인 빈 땅으로 남아 장애인에게 냉혹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지난해 7월 울산 중구의 한 오래된 사찰에서 모처럼 희소식이 들려왔다. 대한불교조계종 백양사가 천 교육감 요청에 흔쾌히 사찰 부지를 팔기로 했다. 주지 묵암 스님이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교육 취지에 깊이 공감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설명회가 8번이나 열리는 사이 400억 원대 특수교육원 건립 사업은 교육부 심사를 넘지 못하고 있다.

특수교육원은 과연 기피시설일까. 2023년 강원도에서는 3개 자치단체가 앞다퉈 특수교육원 유치에 나서 울산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정작 우리가 기피할 대상은 장애인을 약자로 내모는 뿌리 깊은 편견과 숨겨진 혐오다.

특수교육원 건립이 표류하는 동안 울산 특수교육 대상자는 2022년 2819명에서 2024년 3055명까지 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애학생의 미진학·미취업률(2022년 기준)은 40%를 웃돈다. 현장에선 장애학생들이 재능을 발산하도록 선진 특수교육을 실현할 특수교육원 건립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인기 드라마 주인공 우영우가 아니면 어떤가. 장애학생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무엇보다 특수교육원은 장애인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다. 비장애 학생들의 장애 이해 체험, 통합교육 등을 통한 인식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제 논리나 편견에 휘둘려 미래세대가 어울려 살아갈 기회를 빼앗아선 안 된다. 공감과 화해가 무너진 사회는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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