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비상계엄이 몰고온 어둠 걷어내려면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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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사회부장

윤, 국민 납득 못 할 논리 반복
절차마다 딴지 걸다 구속 신세

사법당국, 헛발질로 빌미 제공
이해득실 따지는 여야 혼란 가중

초유의 사태 수습에 진력 필요
장기화 땐 감당 못 할 후폭풍 우려

19일 새벽 국민들은 ‘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또 하나의 불명예스러운 역사를 마주했다. 윤석열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과 보수 유튜버들은 법치주의의 전당인 법원에 난입해 경찰을 폭행하고 시설물을 파손했지만 일반 국민들은 비교적 차분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듯해 그나마 다행스럽다.

이제 윤 대통령은 법원 구속영장 발부로 서울구치소 3평 독방에서 일반 재소자와 똑같이 생활하며 수사와 탄핵심판에 대응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12·3비상계엄’을 야기한 윤 대통령의 ‘결단’을 이해할만한 그 어떤 단서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답답하다. 최근 페이스북에 공개된 ‘국민께 드리는 글’이 윤 대통령 항변의 가장 최신 버전이다. 글은 윤 대통령이 새해 초 직접 작성했고, 분량도 200쪽 원고지 44쪽에 달한다. 어느 정도 진심도 담겼으리라.

하지만 글을 읽은 이들은 여전히 논리가 황당하고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윤 대통령은 글에서 ‘부정선거’ 주장을 또다시 꺼내며 ‘이 상황을 전시, 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라고 판단했다’며 ‘국가 기능을 정상화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계엄 선포 이유를 댔다. 또 극우 유튜버 수준의 상황 설명을 반복하며 ‘증거가 너무나 많다’고 했지만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계엄 성격과 관련,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 ‘소규모 미니 병력으로 초단시간 계엄’이라 규정 지었다. 그러면서 ‘독재를 하고 집권 연장’을 위한 계엄이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이런 주장도 전 국민이 생중계로 무장 군인이 국회 장악 시도에 나서는 위법적 상황을 지켜보고, 공수처와 검찰 수사를 통해 계엄 절차상 위법성이나 무력 사용 지시 정황이 어느 정도 드러난 마당에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수사와 탄핵심판을 마주한 윤 대통령 대응도 국민을 갑갑하게 한다. “법적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과도 다르다. 아니, 모든 절차를 부정함으로써 설득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 듯 보인다. 윤 대통령 측은 헌재 탄핵심판 서류 수취 거부, 공수처 출석 요구 거부, 법원 체포영장 이의신청, 체포영장 거부, 헌법재판관 기피 신청, 공수처 조사 진술·날인 거부, 법원 체포적부심 청구 등 모든 단계에서 ‘딴지’를 걸었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국민들은 여전히 “극우 유튜브에 사로잡혀 망상에 빠졌다”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은 정보와 권력을 쥔 사람이 내린 판단이 맞느냐”는 주장에 더 귀기울인다. 보수층에서조차 윤 대통령이 법적 다툼을 포기하고 지지세를 결집해 정치적 해결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헌법과 법률을 잣대 삼아 실체적 진실을 좇아야 할 수사당국과 정치권은 반복되는 헛발질로 국민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초기 수사기관 혼선, 내란죄 수사권 논란 등 우여곡절 끝에 수사의 키를 잡게 된 공수처는 여전히 미덥지 못하다. 수사권 이첩 이후에도 체포영장 발부를 놓고 ‘법원 쇼핑’ 논란을 일으키더니 체포영장 집행 때도 경찰에 손을 내밀고서야 가까스로 윤 대통령 신병을 확보했다. 그나마 법원이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겨우 체면치레는 한 수준이다. 법원 역시 ‘형사소송법 적용 제외’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권은 진실보다는 이해득실 따지는 데에만 혈안이 된 듯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강경 일변도로 몰아치며 민생 대신 정치적 이해만 좇는 모습을 보인다는 의심을 자초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고발, 일방통행 식 특검법 발의 등을 반복하며 어떻게 해서라도 탄핵의 시계를 빨리 돌리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윤대통령 사형 선고” 발언이나 ‘카톡 검열’ 논란 등 민주당 의원들의 오만도 더해졌다. 이런 조급함에 국민들은 거꾸로 ‘거대 야당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결국, 지지율이 국민의힘에 뒤지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받아들었다.

국민의힘도 6인 체제였던 헌재 구성을 바로 잡으려는 절차를 막아서더니 체포영장 집행을 막으려고 대통령 관저로 몰려갔다. 계엄 사태를 책임지려는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백골단을 자처하는 청년들의 국회 기자회견을 주선한 일은 어처구니 없었다.

선포부터 해제까지 6시간 만에 결론 난 계엄이지만 후폭풍은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윤 대통령은 사법 절차에 맞춰 ‘헌법 수호 책무’를 지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국민에게 충실히 밝혀야 한다. 사법당국도 차분하고 분명하게 진실을 밝혀나가길 기대한다. 최고지도자와 국가기관의 오판과 실책은 그 파장을 짐작하기도 어렵다. 대통령 구속을 맞닥뜨린 극렬 지지자들은 이미 전례없는 ‘법원 테러’를 감행할 만큼 흥분한 상태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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