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돗대산과 무안공항의 눈물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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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콘텐츠랩본부장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비극
돗대산 사고 기억과 맞닿아

인재성 참사 슬픔과 아픔 공감
다시는 비극 되풀이되지 않아야

국내 공항 안전성 보완 급선무
지방공항 비하는 항공 안전의 적

사고 소식을 접하곤 곧장 22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소방대원들이 들것을 마주잡고 비탈길을 허겁지겁 달려 내려오던 그날. 모두가 울부짖듯 헉헉대며 돗대산 진흙탕길을 오르내렸다. 봄비에 물러진 산길에 푹푹 빠지는 발을 빼내며 산비탈을 오르다 보니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 동강난 항공기 동체, 매캐한 연기, 숯덩이로 변한 어떤 형체들 그리고 아득한 절규. 2002년 4월 15일 낮의 참혹한 사고 현장이다. 중국 베이징에서 김해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중국국제항공 CA-129편이 경남 김해시 돗대산에 충돌한 사고다. 승객과 승무원 등 모두 167명의 탑승자 가운데 129명이 결국 비통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당시 사회부 기자로서 참사 현장을 취재하며 공감한 울분과 비탄은 마음과 몸 깊은 곳에 고스란히 쌓였다.

조종석에서 살아남아 구조된 당시 30세 중국인 기장 우신루는 사고 기종 보잉767 비행 경력 300시간이 채 되지 않는 초보였다. 사고 원인을 취재하면서 김해공항은 주변에 높은 산악 장애물들이 포진해 상황에 따라 안전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 공항이라는 사실을 이때 알게 됐다. 악천후 시 고난도 항법이 필요해 항공기 조종사들이 첫손에 꼽는 이착륙이 어려운 활주로였다. 결국 사고는 조종사 과실과 김해공항의 입지적 취약성이 함께 빚은 인재였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인명 희생의 울분은 부산·울산·경남 신공항 요구로 분출돼 가덕신공항으로 이어졌다.

연말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 소식에 어딘가 깊이 숨어 있던 아픔이 별안간 되살아났다. 처참한 제주항공 사고 장면들을 대할 때마다 돗대산 사고 모습이 오버랩된다. 혼재되는 경험으로 슬픔과 고통은 증폭된다. 물론 두 사고와 직접 관련된 유가족의 한없는 비통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불길에 휩싸였다 잔해로 남은 무안공항 현장 모습을 바라보기 힘겹다. 현장과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끔찍한 슬픔이 전해져 가슴이 미어진다. 희생자 유가족이 참사 현장을 처음 찾은 지난달 29일의 오열 장면을 접하고선 같이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20여 년 전 중국 여객기 추락 사고 희생자 유가족이 돗대산 사고 현장에 처음 오른 날도 그랬다. 유족들은 여객기 동체 아래 잔해를 맨손으로 긁으며 희생자 흔적을 찾았다. 하늘로 간 가족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으며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돗대산 정상 땅바닥을 헤집어 팠다. 장신구 보석 조각과 불길에 훼손된 옷가지 등 유류품을 찾아내며 쓰러졌다.

여객기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비극적 사고에 따른 슬픔과 고통이 다시는 없기를 기도만 하고 있기엔 우린 여전히 너무 허술하다. 이번 참사 희생을 키운 것으로 지목되는 무안공항 활주로 끝 콘크리트 둔덕만 봐도 그렇다. 인류는 이미 오래 전 활주로 끝 콘크리트 둔덕 사고를 경험하며 큰 교훈을 얻었다. 2004년 캐나다 핼리팩스공항에 착륙하던 화물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로컬라이저 지지용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했다. 이 사고로 7명이 치명상을 입었다. 캐나다 정부는 사고 이후 공항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콘크리트 둔덕을 완전히 제거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우리나라에선 여객기가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해 179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주요 공항에 항공기 이탈 방지 시스템(EMAS)을 갖추기 시작했다. EMAS는 활주로를 벗어난 항공기 속도를 급격히 줄여 주는 시설이다. 현재 미국 공항 71곳과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 등에 EMAS가 완비됐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느 공항에도 이 안전시설은 없다.

늘 지역공항을 비하하는 데 혈안이 돼 지역공항 무용론을 펴는 우리 내부의 적도 국내 항공안전을 위협하는 원흉이다. 제주항공 사고 직후 서울 언론들과 이른바 수도권 ‘항공마피아’ 세력들은 경제성에 토를 달며 지방공항 회의론에 불을 붙인다. 지방공항 한계와 미비점을 지적하면서도 안전성 보완엔 딱히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들의 단골 레퍼토리인 ‘공항 포퓰리즘’ ‘고추 말리는 공항’ 등의 표현은 지긋지긋하다. ‘서울공화국’을 대변하는 서울 언론들은 최근 기다렸다는 듯 특별법에 따라 이미 진행되고 있는 가덕신공항 사업에도 다시 시비를 건다. 국민의 절반이 수도권에 사는 게 사실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지역에 산다. 수도권에만 제대로 된 공항이 필요하다는 건 수도권 중심론자들의 패권적 지역주의일 뿐이다. 이제 무엇보다 무안공항을 비롯한 대한민국 지방공항들의 안전성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다. 부울경 지역의 경우 한층 더 안전한 가덕신공항 운영을 위해 활주로 1본 추가와 너비 확장 등의 과제 해결에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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