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법 기술자'들… 대한민국 리더들의 민낯
김형 편집부 차장
그럴 줄 알았다. 탄핵 열풍이 전국을 휩쓸던 상황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탄핵을 순순히 수용할 리 없다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윤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 직후 지루한 법정 다툼을 발표했다.
그는 2차 탄핵 표결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통치 행위”라며 “탄핵심판이든 수사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자신감과는 다르게, 시작부터 좀 수상하다. 공수본의 출석요구서도,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의결서도 윤 대통령 측은 아예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법적 절차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재판과 수사를 질질 끌려는 속내가 보인다.
윤 대통령 정도면 이러한 대응이 가능할 법 싶다. 사실, 윤 대통령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검사 출신이다. 평생을 ‘검사밥’만 먹고 살았으니 법의 한계와 허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법을 기술적으로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건을 끌고 가는 데 능숙하다. 소위 ‘법 기술자’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양심과 도덕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법을 어기지 않았잖아?” 한마디면 충분하다.
법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효율적인 도구 중 하나이다. 문제는 법이 항상 정의롭고 공정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200년 전 임마누엘 칸트는 “법의 정의를 찾는 건 아직도 미완성”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200년이나 지난 지금 별로 나아진 바는 없다. 이러한 법의 한계는 ‘법 기술자’들에게는 기회가 된다. 여기서 대한민국 리더들의 ‘위선’이 드러난다.
며칠 전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대법원 최종 선고를 받자 국민들은 ‘위선’이라는 불쾌함에 맞닥뜨렸다.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 ‘청와대 감찰 무마’ 등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1심과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조 전 대표의 재판은 5년이나 걸렸다. 그가 법을 잘 아는 법학자이기에 가능했다. 재판이 지연되는 동안 그는 마치 정권의 피해자처럼 행세했다.
선고 직후 조 전 대표는 “미안하다” 대신 “사법 적용은 아쉽다”며 그다운 말장난을 쳤다. 중산층에게는 ‘공정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입시 비리를 저질러 놓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변호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줄줄이 걸려 있는 자기 재판을 한없이 지연시키는 데 재주가 넘친다.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재판부에 대해선 기피 신청을 하고 법원이 보낸 선거법 항소심 소송기록접수통지서를 뒤늦게 수령했다. 재판을 질질 끌어서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서둘러 대선을 치르려는 속셈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고는 헌재를 향해 “윤 대통령 파면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라”고 압박하는 일이야말로 이중적 잣대이다.
2024년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대표 리더들의 모습이다. 국민은 2024년 현재를 살아가는데 대통령과 정치인은 여전히 1980~1990년대를 머물러 있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허술한 법을 면피로 삼지 말고 “마음 속에 있는 도덕 재판소”라는 양심 법정에서도 당당함을 유지하는 것이 리더의 품격이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