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업계엔 녹색 ‘훈풍’… 나머진 ‘찬바람’[33조 녹색채권 어디에]
LG엔솔, 2조 6000억 발행해
미 현지 공장 건설 자금 충당
트럼프 2기 가격 경쟁력 확보
녹색산업 내 전기차 관련 편중
여러 분야서 가치 활용 고민해야
2024년 11월 미국 대선이 끝나고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트럼프 당선인의 자국 우선주의에 대한 반응이었다. 글로벌 대표 이차전지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은 다행히 트럼프 시기에도 미국 시장을 비집고 들어갈 카드가 있다. LG엔솔은 현지에 생산공장이 있다. 미정부의 고관세를 회피할 수단이다. 최근엔 트럼프 2기의 개국 공신 일론 머스크의 회사로부터 잇단 수주를 따냈다. LG엔솔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녹색채권을 많이 발행한 기업이기도 하다.
■캐즘에 구원투수 된 녹색채권
LG엔솔은 2023년 6월 1조 원, 2024년 2월 1조 6000억 원 모두 2조 6000억 원의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전체 녹색채권 33조 5561억 원의 7.5%에 해당한다.
녹색채권은 미국 미시간과 오하이주 등 현지 배터리 공장을 짓고 증설하는 용도로 쓰였다. LG엔솔이 배터리 선두 기업이기는 하지만, 공장 증설 등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지난해부터 전기자동차 판매 증가률이 둔화되는 일명 ‘캐즘’ 구간에 접어들었다. 조 단위 투자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캐즘 구간에도 LG엔솔은 녹색채권 덕에 2조 6000억 원의 시의적절한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지난 2월의 경우 애초 발행 규모는 8000억 원으로 계획했으나 수요예측에서 5조 6100억 원의 매수 주문이 몰려, 발행액을 2배로 늘렸다. 그만큼 자금 걱정을 덜어내며, 순조롭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장 증설 프로젝트는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LG엔솔은 올 하반기에만 포드·리비안·테슬라는 물론 일론 머스크의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 등으로부터 배터리 납품을 의뢰받았다. 미국의 고관세 정책으로 중국 경쟁 업체가 타격을 받게 됐지만, LG엔솔은 현지 공장으로 관세를 피하며 오히려 가격 경재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공장 증설이 진행되지 않았다면, 여러 계약을 놓쳐야만 했다.
LG엔솔 포함해 배터리 관련 업체들이 발행한 녹색채권은 모두 6조 4197억 원에 이른다. 33조 넘는 전체 녹색채권의 19%에 해당하는 규모다. 세부적인 용도로 봤을 때 녹색채권은 배터리를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쓰이기도 했다. 배터리 완성 업체뿐만 아니라 배터리 부품과 소재 업체들도 R&D, 공장 증설, 재료 구매 등 다용한 용도로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LG엔솔 측은 “투자자들은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녹색채권에 일정규모 투자를 진행하는데, 이들 투자자 수요를 분석하고 극대화해 원하는 규모와 금리 수준을 달성했다”며 “녹색채권 발행이 주요 투자자의 높은 관심을 유도할 것이라 예상했고, 그대로 원하던 성과를 얻었다”고 채권 발행 배경을 설명했다.
■녹색의 부익부 빈익빈
다른 녹색산업들도 배터리 분야만큼 녹색채권을 잘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배터리 등 전기자동차에 집중된 녹색채권의 편중성이 문제가 된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 현장에 직접 투입된 녹색채권은 모두 11조 1651억 원이다. 공장 증설, 연구개발 투자, 부품 구매 등으로 쓰였다. 이 중 6조 4197억 원(58%)이 배터리 관련이다. 이어 1조 2686억 원(11%)이 친환경 자동차 관련 시설 투자·연구개발·부품 제작 등에 쓰였다. 배터리 역시 대부분 전기차 공급용으로 쓰이므로, 사실상 산업 부문에 쓰인 녹색채권의 70% 정도가 친환경 자동차에 투자된 셈이다.
나머지 30%를 몇몇 산업군이 나눠가지고 있다. 전기차 관련 분야가 아니라면, 녹색채권의 활용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산업 분야 내 세번째 투자처는 발전 사업으로, 규모는 1조 345억 원(9%)이다. 에너지 생산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지만, 발전 설비 부품 제직이나 공장 증설 등에 투자한 경우다. 한화 그룹 계열사들이 태양광 관련 투자로 8550억 원을 발행한 것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나머지 2000억 원가량은 수소연료전지 공장 건설, 풍력발전기 부품 제조 등의 용도로 쓰였다.
이밖에 자원 재생과 재활용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데 5863억 원(5%), LNG 선박을 제조하는 데도 4236억 원(4%) 등의 녹색채권이 발행됐다.
분야별로 녹색채권 활용 정도가 다른 것은 해당 산업의 시장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배터리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관련 업계는 성장성에 대한 확신으로 꾸준한 투자가 필요해, 자금 충당이 수월한 녹색채권 발행에 적극적이다. 국내 다른 녹색산업 분야 대부분은 아직 시장이 불확실하다. 기업 입장에선 굳이 경비를 들이고 복잡한 절차를 감수하며, 투자금을 모을 필요성이 없다. 풍력 발전이 강한 유럽에선 녹색채권이 발전 분야에 집중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경향성은 녹색채권을 포함해 녹색금융의 활성화는 녹색산업이 성장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녹색채권이 시장으로부터 독립된 상품이 아닌 만큼, 녹색산업이 정체 또는 위축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기관의 활성화 효과는 제한적이 수밖에 없다.
역으로 녹색채권을 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분야에 기초 인프라를 다지는 데 투입하자는 의견도 있다. 체계적으로 특정 녹색산업 육성할 계획을 잡고, 초기 필요 자본을 녹색채권으로 충당하는 방안이다. 시장이 녹색채권을 필요로 하기 전에 녹색채권으로 시장을 활성화하자는 것으로, 녹색채권과 산업 간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목적이다. 개별 기업에서는 불가능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한 방안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 박남영 금융팀 책임연구원 “녹색채권은 시장과 유기적으로 얽혀있는데, 별개 상품으로 인식해 연결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며 “녹색채권은 일정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녹색산업 육성에 활용할 고민을 한다면, 여러 분야에서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8KlLYwOqEqwFaTZLnSKnv5b4f0TgRvvfhVT9xgDtD-w/edit?usp=sharing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