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미국은 왜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가 없을까
이응혁 부산항만공사 국제물류지원부장
전 세계에 컨테이너 선사는 약 100개가 있다. 하지만 세계 양대 기간항로인 아시아~북미, 아시아~유럽 정기노선을 운영하는 선사는 10개에 불과하고, 이를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라고 한다.
컨테이너 선박은 전 세계에 약 6300척이 있는데, 이는 전체 상선(약 10만 척)의 약 6%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공산품 운송 대부분을 담당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글로벌 해상 공급망 혼란도 컨테이너 해상 운송에서 발생한 문제다.
해운업 특성상 '장기적 성장' 불가피
주주 위한 '단기 실적' 압박 땐 못 버텨
유럽은 직원·지역사회 관계까지 감안
기업 문화 차이가 지속 가능성 갈라
HMM은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 중 유일한 한국 국적이다. 전체 선복량 중 비중은 2.9%를 차지해 세계 8위 규모다. 상위 10대 글로벌 선사가 전 세계 컨테이너 선복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다.
메이저 선사들의 국적은 스위스(MSC), 덴마크(머스크), 프랑스(CMA CGM), 중국(COSCO), 독일(하파그로이드), 일본(ONE), 대만(에버그린, 양밍), 한국(HMM), 이스라엘(ZIM)로 모두 9개 나라다. 대만만 유일하게 글로벌 선사 두 곳을 보유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세계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에 글로벌 선사가 전무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컨테이너를 이용한 해상 운송을 최초로 도입한 나라는 미국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군수 물자를 효율적으로 운송하기 위해 컨테이너를 활용한 것도 미국 기업이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컨테이너 화물을 수입하는 국가도 미국이다. 그러나 미국에 글로벌 선사가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세계 최초의 컨테이너 선사이자 1990년대 최대 컨테이너 선사였던 미국 국적의 시랜드(Sea Land)는 1999년에 덴마크의 머스크에 인수되었으며, 그 이후 미국 국적의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의 해운 규제, 높은 운영비, 미국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 변화 등 다양한 이유가 거론된다. 그러나 필자는 미국의 독특한 기업 문화에서 그 이유를 찾는 견해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미국 기업은 주주 가치 극대화를 기업 운영의 핵심 목표로 삼는다. 주가 상승과 이익률 개선은 최고경영자(CEO) 평가의 주요 기준이며, 이에 따라 CEO들은 단기 성과에 집중하게 된다. CEO의 성과 기반 보상은 평균 연봉보다 주식과 옵션 비중이 매우 크며, 평균 CEO 연봉은 일반 직원 대비 200~300배에 달한다.
그러나 해운업계에서는 ‘단기 성과’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비현실적이다. 첫째, 자본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의 경우 발주 시 수조 원의 비용과 2~3년의 건조 기간이 소요된다. 둘째, 선박은 운항 후 10~20년 이상 운영을 전제로 하므로 수익 실현 시점이 매우 길어 단기 성과 압박과 맞지 않는다. 셋째, 시장의 수요·공급 변동성으로 인해 단기 성과 평가가 어렵다.
예를 들자면, 필자가 부산항만공사에 입사했던 2005년에는 글로벌 선사가 20개였지만,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선박 공급 과잉으로 해상 운임이 원가 이하로 떨어지면서 한진해운을 포함해 10개 선사가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 시기에 미국 선사가 있었다면 매년 CEO가 교체되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 유럽의 기업 문화는 미국과 사뭇 다르다. 미국이 주주 중심주의(Shareholder Capitalism)를 고수하는 반면, 유럽은 이해관계자 중심주의(Stakeholder Capitalism)를 강조한다. 유럽 기업은 주주뿐만 아니라 직원,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한다. CEO에 대한 평가는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 경영을 통해 장기적 성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도 많다. 머스크는 가족이 소유를 유지하되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위임하는 방식을 통해 장기적 성장을 도모하는 대표적 사례다.
상위 10개 선사 중 유럽 선사는 4개에 불과하지만, 선복량 기준 1~3위(MSC, 머스크, CMA)와 5위(하파그로이드)를 포함하고 있어 합계 선복량이 전 세계의 54%(약 1685만TEU)에 달한다. 아시아 4개 국가(중국, 일본, 대만, 한국)는 5개 선사를 보유하고 있으나, 선복량 점유율은 28%(약 862만TEU)에 그친다.
기업 문화의 차이가 글로벌 해운 시장에서 뚜렷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핵심 요인이라면, 이는 우리 국적 선사의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깊이 고려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