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탄핵 정국, 한국 ‘외교적 고아’ 되나!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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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한일, 한중, 남북 관계… 난제 수두룩
트럼프 2기 ‘한미일 삼각 협력’ 가능할까?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외교 리더십의 공백이 심화되면서 한국 외교가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지게 됐다. 패권국 사이에 끼어있는 한국이 ‘고립무원' ‘외교적 고아’의 처지에 놓인 셈이다. 내년 1월 트럼프 복귀를 앞두고, 향후 한 달여 동안 모든 외교적 초점은 ‘트럼프 2기’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2기의 출범으로 인한 불확실성에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한중, 한일 관계도 외줄타기를 하듯 위태롭다. 게다가 러시아 파병을 결행한 북한의 핵무장 능력 강화 등으로 주변국과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이런 난제를 풀 대한민국의 수장이 사라졌다. 피의자로 입건된 한덕수 국무총리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을 강행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에 극렬하게 반대를 해왔기 때문에, 과도기적 성격을 가진 정부가 정책 수정도, 유지도 힘든 ‘딜레마’에 빠지는 상황이다.


11월 6일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미국 대선 승리 선언 방송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11월 6일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미국 대선 승리 선언 방송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우선주의’ 트럼프 2기 대응은

‘트럼프’가 돌아왔다. 대한민국 앞에도 풀어야 할 난제가 쌓여 있다. 돌아온 트럼프 당선자는 더욱 강화된 ‘미국 우선주의’를 예고했다. 트럼프는 줄기차게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및 자주적 방위 역량 강화, 미국의 불필요한 군사적 개입 축소를 공언했다. 트럼프는 대미 흑자국인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고 부르면서 합의한 방위비 분담금의 9배 증액(연간 100억 달러)과 관세 인상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의해 이미 합의한 분담금까지 인상할 경우 자칫 국내 여론의 반발과 동맹국 미국에 대한 신뢰 상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미 성향의 정치 지형을 만들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나 관세 장벽, 보조금 축소 등 정책 변화가 놓여 있다. 또, 반도체,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 주력산업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절실하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행정명령을 통해 인플레감축법(IRA)과 반도체법에 따라 미국에 투자한 외국기업에 제공하던 혜택을 없애거나 축소할 예정이다. 민주당 정권 시절에 강화됐던 미국 주도의 공공외교와 민간 차원의 외교·친선·협력도 상당 부분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한국 외교 관계에서 완충재 역할을 했던 민간 영역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한국으로서는 트럼프 인수위를 상대로 한 적극적인 외교, 범정부 컨트롤 타워의 선제적 가동이 시급한 상황에서 외교 공백 사태가 뼈아플 수밖에 없다. 특히 일본·호주·필리핀 등 한국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국가들과의 다자 안보 협력 강화, 새로운 안보 협력체 구성, 한미일 안보 협력, 미국과의 핵 안보 협의체 실효성 제고 등이 표류할 위기에 놓였다.


■미중 전략경쟁과 한국

트럼프 2기는 중국 견제에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중국의 군사적·경제적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의 협력을 한층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미중 이익 갈등과 체제 경쟁이 혼합되고, 중국이 보복적인 관세·경제 정책을 실행하면 미중 관세전쟁이 터지고, 자동적으로 한국도 관여할 수밖에 없게 된다”라고 예고한다. 하지만, 중국은 2016~2017년 사드 및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이미 폭력에 가까운 외교 수단을 한국 정부와 재계에 휘둘렀다. 중국은 롯데 손보기를 통한 협박과 보복을 일삼았고, 그 영향으로 오히려 한미일 안보·경제 협력 강화를 초래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에 대해 60~100% 공격적인 관세 부과와 기업별 제재를 실행하고, 그 칼춤에 한국이 어쩔 수 없이 맞장구를 칠 경우 한중 간의 갈등 고조마저 우려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정확한 상황 묘사일 정도다.

부경대 중국학과 서창배 교수는 “트럼프 2.0 출범과 함께 미중 전략경쟁 심화를 우려하는 중국 정부는 주한 중국대사 지위 국장급 승격, 비자면제 조치 등 한국과 화해 분위기 조성에 노력했고, 사실은 한국과 더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서 “지금은 시국이 정리될 때까지 관망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본격적인 양국 관계 진전과 협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11월 14일 제주 남방 공해상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에서 열린 한미일 다영역 훈련 24-2차 프리덤 에지에서 그레고리 뉴커크(왼쪽부터) 미 5항모강습단장, 다카시 나츠이 일본 제4호위대군 사령, 허성재 해군7전단장이 악수를 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월 14일 제주 남방 공해상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에서 열린 한미일 다영역 훈련 24-2차 프리덤 에지에서 그레고리 뉴커크(왼쪽부터) 미 5항모강습단장, 다카시 나츠이 일본 제4호위대군 사령, 허성재 해군7전단장이 악수를 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교 정상화 60주년, 한일 관계 미래는

한일 양국은 2025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까지 양국의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한일 관계도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역사 문제에서 한국이 기대하는 수준의 전향적 태도를 보일 수 있을지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불거진 한일 갈등은 불안정한 양국 관계를 그대로 표출했다. 일본의 선의에만 의지했던 윤석열 정권의 ‘선한 외교’가 실패한 셈이다.

지난 10월 치러진 중의원선거에서 참패한 이시바 내각의 정권 지속 여부도 불확실하다. 자민당은 15년 만에 소수 여당으로 전락했고, ‘비주류파’인 이시바 총리는 당내 장악력이 약하다는 평가다. 내년 7월 치러질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야당에 정권을 넘겨주는 불안정한 상황이다. 이시바 내각이 한일 관계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시바 총리는 외교적 성과를 통한 지지율 상승 목적으로도 트럼프 취임과 동시에 조기 미일 정상회담을 가질 전망이다. 이미 총리 보좌관이 지난달 20일부터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캠프 인사들과 회동했고, 조기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외교의 초침이 점점 빨리 돌아가는 상황이다. 엄중한 국제 정세 아래 한일 간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지만, 한국만 외톨이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이다. 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방위비 부담, 한미일 경제·군사 협력 등 공감대를 강화해야 할 상황이다. 현재 주한 미국대사관 홈페이지에는 블링컨 국무장관과 조태열 외교통상부 장관이 ‘한미일 삼각 협력을 강조한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하지만, 트럼프 2기가 3국 간 협력을 기조로 한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계승할지는 미지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북한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장관과 함께 11월 29일 공연을 관람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북한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장관과 함께 11월 29일 공연을 관람했다. 연합뉴스

■심화되는 북러 군사·기술 협력

러시아 파병 실행에 따른 북러 간 군사 기술 협력 심화와 북중러 삼각 협력 구도 형성이 한반도를 둘러싼 가장 우려할 안보 위협이다. 중국마저도 최근 러시아 국방장관의 방북 시 중러 연합 공중연습을 실시했다. 북·중·러 삼각 구도마저 형성되는 상황이다. 향후 제일 큰 과제는 북한 핵 위협 방지다. 핵 개발은 물론이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핵 물질도 문제다. 이 상태로 진행하면 2047년이면 북한이 보유할 핵 물질 누적 생산량은 핵탄두 500개 분량으로 추정된다. 이미 단거리미사일은 완성됐고, 극초음속 중거리미사일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러시아와의 군사 기술 협력으로 5~10년 안에 완성될 전망이다. 신형 잠수함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하고 내년부터 한반도 주변 해안을 누빌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취임 초기에 북한 김정은을 다시 만나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엉터리 협상을 벌일 경우 한국은 물론이고 동북아시아의 안보에 엄청난 위협이 된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 등으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북한 문제에 대한 한미일 3국의 공동 대응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11월 14일 제주 남방 공해상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에서 한미일 다영역 훈련 24-2차 프리덤 에지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11월 14일 제주 남방 공해상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에서 한미일 다영역 훈련 24-2차 프리덤 에지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상외교, 2025년 10월 경주 APEC에서 정상화 가능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과연 한국의 과도기 정부가 한미, 한중, 한일, 남북 관계에 불어닥친 위기를 극복할 역량이나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해외순방은 물론이고, 정상급 외빈의 방한도 쉽지 않은 상태이다. 수출과 외교가 핵심인 대한민국, 세계 10대 경제강국에서 정상외교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한국 외교가 사면초가에 내몰린 상황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의 결론과 관계없이 내년 상반기까지 정상외교 공백을 기정사실화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한덕수 국무총리나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타’로 나설 수 있지만, 무게감과 대표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계엄 정국에 따른 수사와 탄핵, 조기 대선까지 염두에 둘 경우 한국 정부가 외교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여야 정치권이 합세해서 국가대표로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가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정상외교의 정상화는 2025년 10월 경주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즈음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예상한다”라고 우려했다. 대한민국의 국제 정세가 산 넘어 산인 지경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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