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12·3 비상계엄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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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 망령 넘어 정치의 본령 성찰하는 계기로

한국 현대사 비상계엄 13차례
권력 유지 위해 시민 기본권 제한
정치를 후퇴시킨 역사적 범죄

한강, 10일 노벨문학상 메달 받아
폭력에 대한 성찰 '보편성' 인정
계엄 사태 겹쳐 역사적 아이러니

부정 난무하는 한국 정치의 낙후
시민정신과 민주주의의 힘으로
‘진정성의 정치’ 다 함께 일궈야

12·3 비상계엄 후폭풍이 몰아치는 우울한 현실 속에서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한 줄기 위로로 다가온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진행된 공식 노벨상 시상식에서 메달과 증서를 받고 있다(왼쪽 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발표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후폭풍이 몰아치는 우울한 현실 속에서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한 줄기 위로로 다가온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진행된 공식 노벨상 시상식에서 메달과 증서를 받고 있다(왼쪽 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발표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 연합뉴스

소설가 한강이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상 공식 시상식에 참석해 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바로 일주일 전, 한국인은 역사의 창고에 폐기된 줄 알았던 비상계엄의 망령을 목도했다. 45년 세월의 공백을 일순 무너뜨린 현실의 비현실성 앞에 2024년 끝자락을 힘겹게 통과하던 국민들은 몸서리쳤다. 한강 작가와 12·3 사태는 ‘계엄’이라는 이름의 국가폭력을 통해 매개된다. 1980년 계엄군에 짓밟힌 광주의 아픔을 아로새긴 〈소년이 온다〉는 폭력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로 세계적 보편성 차원에서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소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소설을 방불케 하는, 믿기지 않는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서 국가폭력과 민주주의, 정치의 근본에 대해 생각해 본다.

■ 되풀이되는 비극의 역사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프랑스 혁명을 다룬 칼 마르크스의 저작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언급된 이 말을 ‘한 번은 비극적 종말, 또 한 번은 행복한 결말’로 해석한다면 커다란 오해다.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1799년 쿠데타를 모방해 1852년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을 역사의 우스꽝스러운 광대극으로 비꼰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폭거를 저 경구에 비춰본다면? 아직은 비극이 될지, 소극(笑劇)이 될지, 해피엔딩이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느덧 2024년 달력의 마지막 페이지. 내년이면 2025년 을사년이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대한민국에 의회주의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계엄 시도가 있었다는 현실은 세월의 착시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계엄.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위기 상황에서 군대를 동원해 행정권과 사법권을 통제하는 비상조치를 가리킨다.

그동안 대한민국에 선포된 비상계엄은 모두 13차례였다. 광복 후 국내외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였던 1950년대와 군사정권 시절인 1960~70년대에 주로 집중됐다. 대부분의 계엄 조치가 권력 유지나 정적 숙청을 위한 불순한 목적이 대다수였다. 그럴 때마다 시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용도로 악용됐으니 역사의 어두운 그늘이다.

특히 주목되는 시대는 박정희 군사정권이다. 자신의 권력 행사에 국민적 동의가 뒤따르지 않자 1970년대 내내 비상상황을 강조했다. 정당성이 부족한 정치집단이 국가적 위기를 명분 삼아 내세우는 것이 ‘비상사태론’이다. 그 뒤에는 공포를 조장해 권력을 이어가려는 탐욕이 숨어 있다. ‘영원한 긴급상황’ 개념이 그렇게 도출됐다. 국민들의 삶과 이성까지 옥죄고 정치를 한참 후퇴시킨다는 점에서 역사적 범죄에 가깝다는 게 학자들의 평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 지속됐던 계엄의 시기는 1979~81년으로 기록된다.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권력 공백을 틀어쥔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그해 10월 27일부터 무려 440일간 비상계엄을 지속했다. 그 한복판에서 빚어진 비극이 5·18이다.

■ 폭력에 대한 한강의 성찰

7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총리가 긴급 담화를 발표하던 즈음,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이 진행됐다. 비상계엄 후폭풍이 여전히 거세던 10일, 한강은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식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작가 중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메달을 품에 안았다.

한강은 그동안 잘 다뤄지지 않았던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비극에 깊이 천착해 온 작가다. 따라서 2024년 12월 3일 자행된 국가폭력 앞에서 한강의 문학을 떠올리는 것은 더없이 자연스럽다.

2014년 작 〈소년이 온다〉는 계엄 상황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소년의 삶과 고뇌를 다룬다. 작품 곳곳에 광주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절절히 배어 있다. 하지만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대신 죽음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소년의 시선과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취한다. 소설의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나’는 한강과 구분되지 않는다. ‘나’는 말한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래서 ‘소년이 온다’는 제목은 주체로서의 현재형을 의미한다. 5·18은 계속되고, 광주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올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2021년 작 〈작별하지 않는다〉도 ‘종료’될 수 없는 역사의 현재진행형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한강의 다른 작품들 역시 역사적 사태를 배경 삼아 인간 내면을 깊이 파고든다. 작품들을 관통하는 근원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폭력을 거부하면서도 폭력으로 이뤄진 세상을 견디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고뇌에 문학의 핵심이 있다.

■ 진정성의 정치는 가능한가

12·3 비상계엄은 한강이 문학을 통해 고발했던 그 옛날 국가폭력의 양상과 다르지 않았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고 쥐여준 권력과 총칼이 국민을 향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가 시도됐다는 사실은 오히려 더 큰 충격이다.

이번 계엄 폭거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선한 정치, 진정성의 정치는 가능한가. 막스 베버는 가르친다. “정치의 중요한 수단은 합법적 폭력이며,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선한 정치를 믿는 것은 정치의 본질을 모르는 위험하고 순진한 일이라는 것이다. 정치 행위는 그 의도와 달리 결과가 어긋나기 일쑤이고 심지어 정반대로 흐른다. 이것이 ‘정치의 비극성’이다.

정치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나. 베버가 말한, 다음과 같은 정치적 소명 의식을 가진 정치인이 필요하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살아 있는 시민정신, 축적된 민주주의의 힘이 이를 견인해야 한다. 이런 정치적 소명이 온 세상을 물들일 때 국가폭력의 반복을 막을 수 있으리라.

마침, 오늘은 5·18 비극을 잉태한 12·12 군사 쿠데타 45주년 되는 날이다. 역사에 이성의 간지(奸智)라는 게 있다면, 소설과 현실이 만나는 이 역사적 아이러니는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일까. 모든 우주는, 그리고 그 속의 개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사건은 총총한 그물로 연결된 개인, 공동체에, 그리고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강 작가의 인식론이 이와 유사하다. 개인의 삶에 관여하는 역사의 비극을 아프게 살피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어떤 형태로 최선을 지향해야 할까. 후세에 어떤 미래, 어떤 사회를 물려줄 것인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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