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연말 술자리, 잘 제조한 하이볼 한 잔이면 '완성'
[하이볼 마스터 노하우 엿보기]
제조법 간단한 하이볼, 핵심은 재료
맛 좌우하는 큰 변수 중 하나가 얼음
제빙공장 제품·구 형태 '빅 볼' 추천
수제 청 활용하면 맛과 멋 동시 만족
라임·허브 등 장식 더하면 금상첨화
맨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시국이다. 그래도 힘든 시기는 결국 지나갈 것이다. 다가오는 연말연시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여유를 즐길 수 있길 바란다.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지만, 적당한 술은 소통과 화합에 이롭다. 맨정신을 잠시 느슨하게 풀어 주니, 꽉 붙들고 있던 속마음을 털어놓기에 편하다. 철학자 칸트도 “술은 마음속을 터놓게 한다”고 하지 않았나.
요새 가장 인기 있는 주류는 아무래도 ‘하이볼’이다. 하이볼은 주로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에 토닉워터나 탄산수, 진저에일 같은 ‘믹서’를 부어 만드는 일종의 칵테일을 뜻한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특별한 연말연시 모임을 준비 중인 이들을 위해 지난 6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4 부산국제주류&와인박람회’에서 진행된 ‘하이볼 마스터 클래스’ 핵심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하이볼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큼지막한 얼음 덩어리들이다. 강사로 나선 전재구 한국음료강사협의회 회장은 하이볼의 맛을 좌우하는 변수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얼음이라고 했다. 가정용 냉동고로 만드는 얼음은 녹는 속도가 빨라 하이볼의 맛을 쉽게 해친다. 최적의 비율로 하이볼을 만들어도 금방 맛이 연해진다. 반면 마트나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얼음은 제빙공장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더 천천히 녹는다. 일부 가게에선 위스키 전문점에서나 볼 수 있는 구(球) 형태의 ‘빅 볼’ 얼음을 판매하기도 한다.
하이볼 제조에는 특별한 기구도 필요 없다. 모래시계 모양의 계량컵인 ‘지거’와 기다란 ‘바 스푼’이 있으면 좋지만, 없다면 소주잔과 숟가락을 써도 무방하다. 맥주잔과 비슷하게 생긴 하이볼 전용 글라스는 따로 준비하는 걸 추천한다. 와인 잔과 마찬가지로 글라스의 두께가 얇을수록 입술에 닿았을 때의 느낌이 좋다.
하이볼 제조 기법은 ‘빌드’라고 한다. 재료를 넣는 순서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가벼운 재료를 먼저 넣고 진한 재료를 나중에 부어야 조화를 이룬다. 예컨대 무거운 토닉워터를 먼저 넣고 ‘진’을 나중에 부으면 애매한 맛이 난다. 위스키와 믹서의 비율은 기본적으로 1 대 3이지만, 진한 맛을 원한다면 1 대 2까지도 괜찮다.
위스키와 믹서 외에도 중요한 것이 ‘모디파이어’다. 향과 맛을 보완하는 모디파이어는 리큐어, 시럽, 수제 청, 비터, 티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시럽은 얼그레이가 대표적이고, 티는 홍차나 히비스커스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수제 청은 한국적인 맛을 낼 수 있어 인기가 많다. 전 회장은 “청을 넣으면 ‘그러데이션’이 만들어져 시각적 효과가 상당하다”면서 “레몬 청은 의외로 향이 약한 편이고, 라임 청은 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달달한 청은 한국인 입맛에도 딱이다. 전 회장은 “학생들에게 하이볼을 마시는 이유를 물어보니 ‘맥주나 소주에 비해 배가 덜 부르고 맛이 달아서’라고 하더라”면서 “국내에서 가장 인기 많은 칵테일 톱 10을 봐도 모히토, 진 토닉 등 맛이 달달한 게 많다. 한국은 주로 맵고 짠 안주를 즐기기 때문에 단맛의 하이볼이 잘 어울리기도 하다”고 말했다.
하이볼 재료도 중요하지만, 직접 만들 때 쉽게 놓치는 것이 바로 가니시(장식)다. 전 회장은 “하이볼을 포함한 모든 칵테일은 맛뿐만 아니라 멋이 있어야 한다”면서 “가니시까지 완성돼야 칵테일”이라고 강조했다.
가니시는 모양에 따라 크게 ‘웨지’와 ‘슬라이스’로 나뉜다. 반달 모양으로 자른 감자처럼 재료를 잘라내는 것이 웨지, 슬라이스 치즈처럼 얇게 자르는 방식이 슬라이스다. 비교적 크고 두껍게 자르는 웨지 방식이 맛에도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레몬이나 라임 같은 가니시를 사용할 때는 ‘바짜담’을 기억하자. 바르고, 짜고 담그는 것이다. 하이볼 글라스 테두리에 즙을 살짝 발라 주고, 글라스 안에도 살짝 짜서 넣어 준 뒤 술에 담그면 향과 맛이 풍성해진다. 레몬의 경우 껍질에 있는 오일을 불에 살짝 태우면 스모키한 맛이 오래 간다. 믹서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토닉워터와 최적의 조합은 라임이라는 것도 기억하자.
허브 역시 훌륭한 가니시다. 전 회장이 추천하는 허브는 로즈마리다. 향과 맛을 풍부하게 해 고급진 느낌을 주는 데 제격이다.
이날 기자가 시음해 본 하이볼은 총 4잔이다. 이 중 비교적 맛이 대중적이고 만들기 쉬워 보이는 레시피 두 가지를 소개한다. ‘화요 하이볼’은 알코올 도수 41도짜리 화요 30mL에 유자청을 티 스푼으로 두 번, 오미자청은 10mL만큼 넣고 토닉워터를 채운다. 모든 청은 얼음보다 먼저 넣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가니시로 라임 웨지를 얹으면 유자와 오미자의 달달한 맛에 라임의 산미와 향이 어우러져 제법 산뜻하다.
‘안동소주 하이볼’은 민속주인 안동소주 30mL에 도라지생강 시럽 10mL를 넣고 진저에일을 채운다. 여기에 레몬 웨지와 로즈마리를 가니시를 더하면 완성이다. 도라지와 생강, 로즈마리의 조합 덕에 향긋한 미향이 코를 즐겁게 한다.
한편, 하이볼은 자칫 방심하면 과음으로 이어지기 쉬운 주류라 주의가 필요하다. 하이볼의 알코올농도는 보통 10~15%로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그만큼 더 빨리, 더 많이 마시기 쉽다. 단맛에 끌려 술술 마시다 보면 금방 취하기 십상이다. 연말연시 흔히 볼 수 있는 추태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면 폭음은 피하도록 하자.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