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깃발이 아니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신호철 소설가

정의라는 단어에 폭력이
사랑에는 이기적 욕정이
민주에는 익명 속 군중심리가
섞일 수 있음을 알아버렸고
시대에 따라 단어 의미 달라져도

사람들 생각은 참 다양하다. 생각이 다르니 가치관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배척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데, 나와 이해관계가 깊은 상태라면 말이 달라진다. 아주 답답하고 불쾌할 수 있다. 이때 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먼저, 이견을 인정하고 적정선에서 타협하는 방식이 있다. 두 번째는 내 주장을 끝내 관철하는 선택이다. 당연하게도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 갈등과 폭력이 이 과정에서 생긴다. 사회는 이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 대응책을 마련한다. 법질서를 강조한다면 좀 더 세밀해진 법의 판결로 대응할 터이다. 이성(理性)과 사유(思惟)의 저력을 믿는 사회라면 인문(人文)과 토론의 역량을 길러 줄 것이다.

하지만 문제라는 것은 뭐든 예상을 뛰어넘기 마련이다. 제도와 사회 시스템으로 거르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이를테면 최근 뉴스에 올랐던 모 여대 건도 그렇다. 한쪽은 공학 전환을 반대하며 학교 시설물에 스프레이를 뿌렸다. 또 한편에서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갈등과 반대는 어디서든 생겨날 수 있다. 문제는 그 방식과 과정이다. 한쪽이 현저히 불리한 입장이라고 해서 그 과정의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적이라는 이름으로 거수투표를 시행하고, 동참하지 않는 학생의 수업을 방해하기도 하는 행위를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고개 끄덕일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내가 주시한 것은 ‘민주’라는 깃발을 내걸고 비민주적 행위를 하거나, 인권이라는 깃발을 내걸고 타인의 인권을 짓밟는 현상이다.

사실, 이런 비슷한 광경을 많이 목격했었다. 파업한 어떤 단체에선 파업에 불참하는 개인에게 강압적인 힘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 폭력의 근거는 바로 정의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학대하는 뉴스를 심심찮게 볼 수 있으며,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가치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고, 심지어 법의 권위를 내세우며 불법을 저지르기도 했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는 논의는 필자의 능력을 벗어난 부분이다. 다만, 지금까지 목격한 사례와 맞물려 오히려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 생겼다. 우리는 왜 민주, 사랑, 인권, 평등 같은 단어 뒤에 숨어서 목청을 높일까? 그 단어들은 오히려 우리가 만든 것인데 말이다. 사는 것이 너무 팍팍해서일까? 개인들 간의 문제는 주변인 혹은 사회 시스템으로 대부분 조정될 터이다. 진정 두려운 것은 이해관계에 따라 세력을 형성한 집단이 들고 흔드는 깃발들이다.

언제부턴가 민주, 평등, 인권, 정의, 사랑, 행복 등등의 단어를 깃발처럼 휘둘러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의’라는 단어에 폭력이 숨어 있고, 사랑이라는 단어엔 이기적 욕정이, 민주라는 단어에는 익명에 숨은 군중심리가 섞일 수 있음을 알아버렸다. 이제는 과거 사람들이 그런 숭고한 단어를 처음 입에 올렸을 때의 의미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단어는 시대가 흐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어쩌면,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국어사전에 ‘정의’에 대해 이렇게 바뀌어 수록될지 모른다. “정의(正義) 1. 명사: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2. 명사:폭력으로 원하는 바를 얻으려 할 때 내세우는 근거. 단어는 깃발이 아니다. 단어는 사람이 인식한 의미를 표현한 최적의 형상일 뿐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