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왜 자살을 결심했을까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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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관후 / 압축 소멸 사회
‘압축 성장’에서 ‘압축 소멸’ 국가로
저출생, 자살률 등 사회 문제 짚어
“정치의 부재가 ‘희망 소멸’ 낳아”

책 <압축 소멸 사회>. 한겨레출판 제공 책 <압축 소멸 사회>. 한겨레출판 제공

“대한민국은 자살을 결심했다.” 다소 충격적인 표현이지만 왠지 납득이 가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소멸’ 문제는 그동안 뉴스에서 반복해서 언급됐다. 인구 절벽과 초고령화 사회 진입, 지방 소멸 등의 사회 현상은 이제 우리에게 일상적인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수십 년 전부터 예고된 비극이었지만 누구도 막지는 못했다. 비극은 어느새 당연해지고, 점점 더 빠르게 우리를 찾아온다.

<압축 소멸 사회>에서는 ‘압축 성장’으로 성공을 거둔 대한민국이 어떻게 ‘압축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 저출생과 자살률, 수도권 집중 현상이 왜 발생했는지, 이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은 어땠는지를 분석했다. 건국대 교수로 일하다 지난달 최연소 국회입법조사처장이 된 이관후 처장이 책을 썼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사회 문제들이 ‘압축 성장’의 결과라고 정의한다. 성공의 원동력이었던 발전주의, 성장 이데올로기, 능력주의, 개인주의가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공동체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선진국을 모방하던 ‘추격 국가’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추월 국가’가 되자 기존의 성장 방식들이 힘을 잃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책 속에서 등장하는 저출생에 대한 진단이 날카롭다. 저자는 ‘잘 사는 삶에 대한 내러티브’가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을 막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조건의 직장에 취업해 비슷한 사람과 만나 결혼해야만 잘 사는 삶이라는 인식은, 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가족을 꾸려 아이를 낳는 것이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인식과 연결된다. 이른바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전체 중 10%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잘 사는 삶의 기준이 너무 높은 셈이다. 청년들은 잘 사는 삶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극심한 경쟁을 치러야 하고, 어느 순간 경쟁에 지쳐 좌절한다. 일명 ‘성공의 덫’이다. “경쟁에서 이긴 청년들조차 행복하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이 경쟁이 공정하지 않고 절대 공정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나는 지옥에 살지만 내 아이까지 지옥에 살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38~39쪽)

압축 소멸의 가장 큰 원인은 정치의 부재에 있다.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는 작동하지만 그 속에서 정치는 사라졌다. 계파정치와 심판 프레임에서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난다. 계파정치가 올바르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 속에 정치적 가치가 담겨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른바 ‘친O계’로 표현되는 오늘날의 계파정치는 정치적 비전보다 친소 관계를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또 심판 프레임만을 주장하는 정치 세력은 인구 소멸·세계 질서 변화 같은 거대한 이슈보다 상대 정당의 실책에 관심을 둔다. ‘나라가 망할수록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책은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해 주요 여야 정치인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구체적인 사건을 들어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윤 대통령이 여러 차례 언급한 ‘반국가 세력’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지적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에서 ‘반국가 세력’이라는 표현을 또 사용했다.

최근 벌어진 ‘계엄 사태’로 우리는 정치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삼권 분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올바른 정치에 목마른 시민들은 매일 거리로 나와 투쟁을 벌이는 중이다. “사회의 소멸에 정치의 소멸이 선행한다. 모든 것이 좋아 보여도 정치가 없다면 언제든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허투루 여기면 안 될 것 같다. 이관후/한겨레출판/256쪽/1만 8000원.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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